항목 ID | GC05800954 |
---|---|
한자 | 河氵昱 |
이칭/별칭 | 담락당,담락당 하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미 |
출생 시기/일시 | 1769년 - 하립 출생 |
---|---|
이주 시기/일시 | 1801년 - 하립 이주 |
몰년 시기/일시 | 1830년 - 하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 건립 |
출생지 | 하립 출생지 - 전라북도 남원시 서봉방[교룡산성] |
거주|이주지 | 하립 이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
외가|처가 | 하립 처가 김인혁(金仁赫) - 전라북도 남원시 서봉방 |
묘소|단소 | 하립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
사당|배향지 | 명려각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남부 마이산 경내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양(晉陽)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청서(淸瑞), 호는 담락당(湛樂堂). 세종 대 영의정을 지낸 경재(敬齋) 하연(河演)이 12대조이고 명종 대 8대 문장가 중 한 명이었던 청천(菁川) 하응림(河應臨)이 7대조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경윤(河慶潤)이고 할아버지는 하한징(河漢澄)이고 아버지는 하경천(河經天)이다. 부인은 삼의당(三宜堂) 김씨이다.
[활동 사항]
하립(河氵昱)[1769~1830] 은 남원 서봉방(捿鳯坊)에서 태어났다. 이름 ‘립’은 삼수 변(氵)에 욱(昱)자를 몸으로 한 글자로, 자전에 없는 조자(造字)이다. 하씨 문중 전래에 의하면, 이는 ‘三日立’ 곧 ‘셋째 너만은 입신양명하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립은 1786년 18세 되던 해에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비슷한 몰락 양반 가문의 후손 김인혁(金仁赫)의 딸 삼의당 김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산사나 한양 등지에서 과거 공부에 매진하였다.
1788년에서 1796년까지 8년간은 한양에서 면학하였는데, 당시 1만 여 권의 장서가이면서 순조 대 영의정,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의 집에서 유숙하였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박학다문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과거 시험에 실패하고 귀향하여 부모를 시봉하였다. 가난한 가세를 일으키고자 1801년 12월에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삼의당 김씨와 부부 시인으로 해로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는 『담락당집』이 있는데 이 중 시집인 『담락당운집(湛樂堂韻集)』은 『담락당 시집』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 진안 문화원에서 번역판이 간행되었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등 모두 209수가 실려 있다. 또한 ‘마이산에 탑들이 줄줄이 들어 있다’는 구절이 있어 마이산 탑의 역사를 시사하는 「금당사우음중씨(金塘寺偶吟仲氏)」라는 시구도 들어 있다.
[묘소]
묘는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있는데 부인 삼의당 김씨와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1983년 진안군 마이산 탑영제 호반가에 담락당과 삼의당 부부의 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담락당·삼의당 기념 사업회에서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