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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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永祥 |
이칭/별칭 | 보익(補益),운암(雲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전영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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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전영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8년 - 전영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전영상 선생 항일 독립운동 기적비 건립 |
출생지 | 전영상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
활동지 | 전영상 활동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비석 | 전영상 선생 항일 독립운동 기적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오동 마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천안(天安) |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본의 무단 통치에 전 조선인이 비폭력 평화적으로 저항하던 만세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보익(補益), 호는 운암(雲巖). 전대현(全大鉉)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전영상(全永祥)[1889~1958]은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에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오기열(吳基烈)·김구영(金龜泳)·황해수(黃海水) 등과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인근 주민 수 백 명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으나 출동한 헌병의 제지로 해산하였다. 그해 4월 7일에도 만세 운동을 벌였고, 특히 4월 13일에는 마령 장날을 맞아 미리부터 운동을 계획하고 마령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전영상은 담력이 대단하여 일본 경찰도 앞에서는 벌벌 떨었으며, 붙잡혀 온 일본 경찰에게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도록 윽박질렀다고 한다. 일본 경찰도 온 몸을 떨면서 만세를 부르고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뒤 붙잡혀 갇혔지만 벽을 무너뜨리고 탈출하였다. 그렇지만 또 붙잡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오동 마을 어귀에 ‘전영상 선생 항일 독립운동 기적비(全永祥先生抗日獨立運動紀蹟碑)’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