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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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地里土城 |
이칭/별칭 | 송내토성(松內土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549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강원종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0년 - 평지리 토성 전영래가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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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평지리 토성 한서 고대학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평지리 토성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549 |
성격 | 성곽 유적|토성 |
지정 면적 | 381.4m[둘레]|3m[높이]|8,447㎡[면적]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평지 토성.
[개설]
평지리 토성은 진안군 마령면 소재지의 동쪽 송내 마을에 있는 평지 토성으로 송내 토성(松內土城)으로도 불린다. 토성은 주변의 비고 차가 13m 정도로 낮은 동산에 있으며, 평면 형태는 동벽이 짧고 서벽은 길며, 남벽과 북벽의 길이가 비슷한 방형이다. 성벽은 외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안쪽은 완만한 지형을 하고 있다. 서벽 중앙에는 문지 및 수구지가 있으며 바로 안쪽에는 우물이 있다. 성 안의 면적은 약 8,447㎡로 통일 신라 시대 경에 축조된 치소 성으로 추정된다.
[변천]
평지리 토성은 주변의 백제의 의해 축성된 합미 산성과 강정리 산성과 달리 평지에 있다. 마령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백제 마돌현으로서 임실현 영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대에 마령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의 지리지의 전주목에 보면 “마령현은 본래 백제 마돌현[마진, 마등량]으로 신라 경덕왕 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라 하여 통일 신라 때 지명이 바뀌었다. 이처럼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산성에서 평지성으로 치소를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안 고적조에는 마령현은 1391년(공양왕 3년)에 진안 현감이 겸무하다가 1413년(태종 13) 폐현되기까지 현성으로 존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 보물 고적 자료』에는 “마령 폐현이라 전함. 부근 동헌 터, 빙고평, 옥평답이라 불리는 곳에는 무너진 돌담, 사기 그릇편, 기와편 등이 현존한다.” 하였는데, 치소 성 부근에는 빙고 등의 창고와 감옥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위치]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는 임실 성수면과 진안읍을 잇는 국도 30호선이 면 소재지를 우회하여 통과한다. 마령면사무소는 평지리 평산 마을에 소재하고 있으며, 토성은 마령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70여 m 떨어진 곳인 송내 마을 동쪽에 자리한다. 이 토성은 주변 평지보다 13m 내외로 야트막한 동산처럼 보이며 외곽을 따라 경사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0년대 전영래가 조사하였고, 그 내용을 2003년에 『전북 고대 산성 조사 보고서』로 간행하면서 수록하였다. 조사 당시 성의 규모를 확인하였고 통일 신라 시대의 읍성으로 보고하였다.
[현황]
평지리 토성의 내부와 주변은 밭과 솔숲이 우거져 있으며, 민묘가 드문드문 조성되어 있다. 토성의 성벽으로 추정되는 통과선은 주변 지형보다 높으며 성 내부는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성의 남쪽에는 소나무 등이 열을 지어 조림되어 있는데 토성 벽의 흔적이 관찰된다. 성의 출입구는 서쪽으로 추정되며 현재에도 소로가 개설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평지리 토성은 삼국 시대 강이 합류되거나 초입부, 그리고 고갯마루가 잘 보이는 지점에 있는 반면에 이 토성은 들판과 산록이 접한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연유는 시대적 상황의 흐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대부분의 치소 성이 산에 위치하고, 교통로의 감시 및 확보 등의 군사적인 측면을 우선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지리 토성은 통일 신라 시대 이후 행정적인 측면이 강조된 현성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평지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