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717 |
---|---|
한자 | 城在山城 |
이칭/별칭 | 대불리 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산 86|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산 56-4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강원종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성재산성 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성재산성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성재산성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산 86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산 56-4 |
성격 | 성곽 유적 |
지정 면적 | 3m[높이]|2m[폭]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개설]
주천면 대불리 새터 마을 남서쪽의 높이 787m의 성재산 정상부에 있고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이 산성은 산 정상부 주위를 두른 테뫼식 산성이며, 둘레는 약 700여m로 추정된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 자료를 인용한 『전라북도 문화재 관리 대장』에는 ‘둘레가 4㎞였으나 지금은 약 680m 정도의 석축과 성문 1개소 및 성문 지가 남아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성의 서쪽에는 치가 확인되며, 동쪽 부분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3m 이상이고, 폭은 2m 정도이다. 성벽은 동사면에 걸쳐 편축식으로 축조되었으며, 성문으로 추정되는 곳과 군데군데 치가 확인되고 있다.
[변천]
산성의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년째 되던 해 명의 이여송이 전주를 탈환하기 전 이곳에 머물면서 부대를 재편성한 후방 보급 기지라고 전해지나 근거는 없다.
[위치]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에서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방면의 지방도 55호선을 따라 가다 운장산 계곡을 넘으면 운장산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흐르는 주자천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 도로를 따라가다가 좌측에 외처사동 마을에 이른다. 그리고 외처사동 마을 남쪽에 질마재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서북쪽 직선 거리 1㎞ 정도 오르면 산 정상부에 산성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9년 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에서 간행한 『진안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성촌(城村) 성재 성지(城址)’로 보고되었으며 당시 석축의 흔적만 확인되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남아 있는 성벽과 규모를 파악하였다.
[현황]
성재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다. 성벽의 통과 선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편에 치우쳐 있다. 성 내부는 100~150m 정도의 타원형으로 평탄한데 최근에 헬기장이 조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성재산성의 축조 시기는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삼국 시대 토기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성재산성은 운장산 북쪽을 통해 산을 넘는 동쪽의 초입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성에서 북으로 4㎞ 지점에는 높이 579.2m의 작은 싸리재가 잘 조망되는 대불리 태평 봉수대가 있어 동서 및 남북 방면의 교통로를 감시하기에 유리한 지점으로 전라북도 동북 산악 지대의 내륙 지방을 연결하는 데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