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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68
한자 趙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591년연표보기 - 조기 졸
묘소|단소 조기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양(豐壤)
대표 관직 사헌부 감찰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豐壤). 풍양 조씨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조맹(趙孟)을 시조로 한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에 추증된 조익상(趙益祥)으로, 조세훈(趙世勛)과 조세찬(趙世贊)을 낳았다. 조기(趙磯)[?~1591]는 조세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 조세훈이 손준(孫浚)의 딸인 평해 손씨(平海孫氏)와의 사이에서 후사를 얻지 못하자 그의 양자로 입후(立後)하였다. 조세훈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유순정(柳順汀) 등과 함께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주도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1519년(중종 14) 조광조(趙光祖) 일파로부터 외람되게 녹권(錄券)을 받은 자로 지목되어 훈적(勳籍)에서 삭제되었으나, 조광조 실각 이후 복적되어 한성부 서윤·풍저창 수(豊儲倉守)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조기는 현령(縣令) 이숙(李淑)의 딸이자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6세손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를 배필로 맞이하여 조희철(趙希轍)·조희식(趙希軾)·조희보(趙希輔)를 낳았다. 이 가운데 가장 현달한 인물은 조희보로, 1588년(선조 21) 식년시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사헌부 장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조희보의 아들이자 조기의 손자인 조형(趙珩) 또한 1630년(인조 8) 식년시에 급제하여 좌참찬·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활동 사항]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수록된 조희보의 묘갈명(墓碣銘)에 따르면, 조기는 생전에 사헌부 감찰에 부임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591년(선조 24) 조희보가 외간상(外艱喪)을 당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조기가 그 해에 사망하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 외 조기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조기가 사망한 후 셋째 아들 조희보가 현달함에 따라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이후 손자 조형으로 인하여 다시 3대의 추증이 이루어지면서 증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풍양 조씨 제1 묘역 내 아버지 조세훈, 큰아들 조희철의 묘와 함께 조성되어 있다. 풍양 조씨 묘역조세훈의 사패지(賜牌地)로서, 이후 풍양 조씨 인물들을 세장(世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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