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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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世勛 |
이칭/별칭 | 국간(國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택 |
출생 시기/일시 | 1483년 - 조세훈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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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06년 9월 8일 - 조세훈 중종반정 공신 4등에 녹훈 |
몰년 시기/일시 | 1539년 - 조세훈 졸 |
묘소|단소 | 조세훈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 |
사당|배향지 | 조세훈 부조묘(不祚廟) - 충청남도 부여군 장하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양(豊壤) |
대표 관직 | 풍저창 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할아버지는 조후지(趙厚之)이고, 아버지는 조익상(趙益祥)이다. 조세훈(趙世勛)[1483~1539]은 평해 손씨(平海孫氏) 손준(孫浚)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어 동생인 조세찬(趙世贊)의 넷째 아들 조기(趙磯)를 양자로 들였다. 조기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숙(李淑)의 딸과 혼인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희철(趙希轍), 둘째 아들은 조희식(趙希軾), 셋째 아들은 조희보(趙希輔)이다.
[활동 사항]
조세훈은 24세의 나이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1506년(중종 1) 9월 8일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그 공으로 관직에 올라 고산 현감·회덕 현감·고창 군수·한성부 서윤·풍저창 수(豊儲倉守) 등을 지냈다. 1519년(중종 14) 11월 11일 중종이 “외람된 것을 추가로 바로잡아서 공권(功券)을 맑게 하라.”며 정국공신 중 공훈이 잘못 기록한 것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여기에 조세훈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이후 공훈이 삭직되었는지 여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고도서인 『기년편고(紀年便攷)』에는 “조세훈 풍양인 중종조 책정국공 사등이 통훈미급 봉 증손 연견하(趙世勛豊壤人中宗朝策靖國功四等以通訓未及封曾孫珩見下)”라 되어 있어 정국공신 4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묘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소재한 풍양 조씨 묘역에 부인과 함께 합장되었다. 풍양 조씨 묘역에는 조세훈의 양자인 조기, 조기의 큰아들인 조희철의 묘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조세훈의 묘비에는 ‘조선 증 자헌대부 공조판서 풍양군 분의정국공신 통훈대부 풍저창 수 풍양 조공 세훈지묘(朝鮮贈資憲大夫工曹判書豊壤君奮義靖國功臣通訓大夫豊儲倉守豊壤趙公世勛之墓)’라 적혀 있다.
[상훈과 추모]
자헌대부 증 공조판서 풍양군(豐壤君)에 추증되었다. 부여군(夫餘郡) 장하리(長鰕里)에 부조묘(不祚廟)[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임금의 명으로 세운 묘당]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