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용기와 지략도 매우 뛰어났다. 진안 에서는 1919년 3월 25일 진안읍 장날을 기해 수 백 명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였고, 4월 3일에는 주천면 , 4월 6일에는 마령면 , 4월 12일에는 성수면 , 4월 13일에는 다시 마령면 등에서 만세 운동이 계속 이어졌다. 전성권 도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
-
... 성수면 송촌 , 성수면 좌산리 , 성수면 좌포리 , 정천면 갈용리 , 주천면 용덕리 , 진안읍 가림리 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광산 김씨 ... 백운면 오정리 , 부귀면 신정리 , 정천면 갈용리 , 성수면 구신리 , 주천면 주자천 , 진안읍 가막리 이다. 금령 김씨 집성촌은 진안군 동향면 ...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서원.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주천서원 은 1924년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서원이다. 주천서원 은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다. 주천면 소재지에서 금산 으로 이어지는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 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주양 교회 는 지역 복음화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양 교회 는 1922년 9월 22일 미국인 선교사 보이열 목사가 4명의 인근 지역 신도들과 함께 방문하여 전도 강연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 마을 김택수 의 집에서 기도...
-
... 3월 25일 진안읍 의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오전부터 수백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하자 장꾼들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 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만세 운동을 시작하여 그날 밤 10시 무렵에도 다시 주민과 학생 60여 명이 마을 앞에서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6일에는 ...
-
...20; 진안 지역의 만세 운동은 3월 25일의 진안읍 장날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주천면 · 마령면 · 성수면 등으로 이어졌다. 만세 운동이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어 행진하자 장꾼들도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 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주양리 에는 화동 학...
-
... 진안면 에 설립되었다. 이후 마령면 [1918년]· 정천면 [1922년]· 주천면 [1923년]· 안천면 [1925년]· 백운면 [1927년]· 부귀면 [...5일 오전에 수백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자 장꾼들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주천면 주양리 에서는 유지 김주한 등이 만세 운동을 계획하여 사립 화동 학교 [지금...
-
...운동을 계획하거나 또는 산발적인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중 주천면 의 청년 김영필(金永弼) 등은 『대한민보』 , 『독립신문』 등 독립운동 ... 무주군 등지에 배포하면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붙잡혔고, 이듬해인 1920년 1월에는 주천면 의 면서기였던 김규현(金奎鉉) 이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후 엄혹한 일제...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수당 이덕응 의 초상화. 수당(修堂) 이덕응(李德應) [1866∼1949]은 덕흥 대원...은 후 낙향하여 지방에 300여 명의 인재를 양성하며 1919년 고종 이 승하하자 주천면 대불리 에 황단을 설단하고 황단제를 봉행하였다. 1922년에 13도 도순강장에 임명...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주천 초등학교 의 교육 목표는 배움과 가르침의 즐거움으로 행복과 감동이 넘치는 주천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며, 학교의 교훈은 ‘큰 꿈을 안고 성실하게[성(誠)], 슬기롭게[지(智)], 튼튼하게[체(體)]'이다. 1919년 7월 주천 공립 보통학교 로 개교하여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