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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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헌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식이나 양념을 돌로 문질러 쓿거나 가는 데 사용하는 도구.
[개설]
확 은 큰 방아나 절구에 찧을 것이 못되는 적은 양의 곡식이나 양념을 돌로 문질러 쓿거나 가는 데 사용하는 도구를 말한다. 예컨대 보리쌀을 넣고 주먹만 한 돌[확]로 돌려가며 바닥을 문질러 대끼거나 고추·마늘·생강과 같은 양념을 같은 방법으로 으깨고 생선뼈를 가는 데도 썼다. 손으로 쥐기 편하게 만들었으며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영암 지역에서는 확과 짝을 이루어 사용하는 것을 확독[확돌]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며 돌확이라 하는 것이 맞다. 돌확은 디딜방아에서 곡식을 넣고 찧는 부분[돌]을 말하기도 하지만, 곡식이나 양념류를 넣고 돌려가며 으깨는 조그만 절구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확 은 영암 지역을 비롯해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쓰인다. 1956년에 펴낸 『한한 청문감』에 돌확은 석구(石臼)라 기록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확 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의 갈돌에서 비롯되어 이후 맷돌과 매통, 토매 등으로 발전하였다. 둥근 공 모양의 신석기 시대 돌공이가 암사동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는 요즈음에도 곡물을 빻는데 사용하는 확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선사 시대에도 딱딱한 열매나 곡물 등을 빻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돌공이 확과 짝을 이루는 돌확은 충청남도 보령시 관창리 유적과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관창리의 화강암제 돌확의 경우는 높이가 9~12㎝ 정도인 작은 돌 상부에 깊이가 얕게 패인 형태이다. 따라서 돌확은 석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연원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확은 적은 양의 보리를 찧거나 고추·마늘·생강 등을 갈기 위해 각 가정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믹서기나 분쇄기의 보급 이후 확과 돌확의 사용가치가 없어져 본래 기능보다는 정원 등을 꾸미는 부속재가 되어 버렸다.
[형태]
확 은 보통 손에 잡히는 둥근 돌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으나 흙으로 구워 낸 것도 있다. 확과 짝을 이루어 사용하는 돌확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연석을 우묵하게 파거나 번번하고 넓적하게 판 것이 있는가 하면,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절구의 윗부분처럼 지름 50~60㎝, 깊이 15~20㎝ 정도 되게 둥그렇게 홈을 판 것도 있고, 오지로 버치[너럭지] 형태의 그릇 안쪽을 우둘투둘하게 구워 낸 것도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우리말에 “돌확 속에 길이 날 때 남편 맛을 안다.” 또는 “돌확이 매끄럽게 길이 나야 남편 맛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시집 갈 때 새것이었던 돌확이 매끄럽게 달았을 때, 즉 세월이 웬만큼 지나야 비로소 잠자리 맛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또 “확돌 깊은 집에 주둥이 긴 개가 든다.”라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서로 관계있는 것들끼리 잘 어우러지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