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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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던 창고.
[관련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 창고조에 “창(倉)이 5개인데 모두 군내에 있다. 성창(城倉)은 서쪽 30리[약 11.78㎞] 담양 금성 산성에 있고, 사창(社倉)은 서쪽 50리[약 19.64㎞] 상치등면에 있다[倉五(皆郡內) 城倉(西三十里潭陽金城山城) 社倉(西五十里上置等面)]”라고 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순창군 창고조에는 “사창(司倉), 영창(營倉), 균역창(均役倉), 진휼창(賑恤倉), 읍산창(邑山倉)이 모두 군내에 있다. 산창은 군 서쪽 30리 담양 금성 산성에 있다. 사창은 군 서북 50리에 있다[司倉 營倉 均役倉 賑恤倉 邑山倉(俱在郡內) 山倉(在郡西三十里 潭陽金城山城) 社倉(在郡西北間五十里)]”라고 되어 있다. 『옥천 군지(玉川郡誌)』[1760]에는 “읍산창 색리(色吏) 1명, 고자(庫子) 1명이 있었다[邑山倉色吏一名庫子一名]”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창고조에는 창이 5개인데 모두 군내에 있다고 실려 있다. 이는 순창 읍내에 있던 창고 5개를 의미하나, 정확히 어떤 창고를 의미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여지도서』 순창군 창고조에는 사창·영창·균역창·진휼창·읍산창 등 5개 창고가 모두 읍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동지지』에 나오는 5개 창고는 『여지도서』에 나오는 5개 창고와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읍창은 읍산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읍산창의 위치에 대해 『여지도서』에는 군내에 있다고만 되어 있고, 1760년 작성된 『옥천 군지』에는 색리 1명과 고자 1명이 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현황]
읍창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