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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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潭郡 |
이칭/별칭 | 용담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용담면|정천면|안천면|동향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선아 |
[정의]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담면, 정천면, 안천면, 동향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용담군은 1895년(고종 32) 옛 용담현에 설치한 행정군(行政郡)으로 1914년 군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에 합쳐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담(龍潭)은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취하였다고 한다. 용담군에는 일남면, 이남면, 일북면, 이북면, 일동면, 이동면, 일서면, 이서면 등의 9개 면을 두었다. 오늘날 주천면[5개 리], 용담면[5개 리], 정천면[6개 리], 안천면[3개 리], 동향면[6개 리]의 5개 면 25개 리가 포함되어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용담군 지역은 본래 백제 물거현(勿居縣)이라 하였고, 신라 경덕왕 때에 청거(淸渠)로 고쳐 부르면서 진례현(進禮縣) 즉 현재 금산군에 소속시켰다. 1313년(고려 충선왕 5)에 지금의 용담(龍潭)으로 개칭하였고, 현령(縣令)을 두었다. 1646년(인조 24)에는 격을 낮춰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6년(효종 7)에는 다시 현령으로 임명하고 특별히 옥천(玉川)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대규모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용담현은 용담군으로 개편되어 남원부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남면, 이남면, 일북면, 이북면, 일동면, 이동면, 일서면, 이서면 등의 9개의 면을 두었다.
[관련 기록]
『고종실록(高宗實錄)』 권33, 1895년(고종 32) 5월 26일에 칙령 제98호 지방 제도 개정건(勅令第九十八號地方制度改正件)을 반포하였는데 그 중 남원부(南原府) 관할 군으로 “남원군(南原郡), 구례군(求禮郡), 운봉군(雲峰郡), 곡성군(谷城郡), 순천군(順天郡), 광양군(光陽郡), 임실군(任實郡), 장수군(長水郡), 진안군(鎭安郡), 담양군(潭陽郡), 순창군(淳昌郡), 옥과군(玉果郡), 창평군(昌平郡), 용담군(龍潭郡), 무주군(茂朱郡)”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원용담 군지』[1973]에 의거하면, ‘풍속은 문(文)을 숭상하고 농사에 힘쓰며 순박하고 예스럽다’고 하였다. 용담군에는 공관으로서 ‘옥천관(玉川館)이라는 5칸의 객사, 생학루(笙鶴樓)라는 관아 건물, 득운루(得雲樓)라는 관아의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용담 향교는 용담면 옥거리 358번지 용강산 기슭에 세워졌으며, 고려 공양왕 때 현령 최자비(崔自卑)가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창건에 관한 기록은 없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병화(兵火)에 타버려 현령 박지술(朴知述)이 옛터의 동쪽에 이건(移建)하였으며, 1633년(인조 11) 현령 오전(吳腆)이 중건하였고, 1664년(현종 5)에 현령 홍석(洪錫)이 그 동쪽에 이건하였다. 이후 퇴락하였는데, 1761년 현령 김한길(金漢吉)에 의해 중수되었으나 그 이후의 중수 내력은 기록의 멸실로 알 수 없다. 현재 용담 향교는 동향면 능금리 2202번지에 옮겨 세웠으며, 대성전·동무·서무와 명륜당을 갖추었고, 입구에는 선정비를 즐비하게 세워 두었다.
[변천]
용담군은 1914년에 군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에 합쳐졌다. 용담군 관할 군 소재지와 일북면 송풍리 지역은 용담면으로, 일동면과 이동면은 동향면으로, 일서면과 이서면은 주천면으로, 일남면과 이남면은 정천면으로, 일북면 삼락리와 이북면은 안천면으로 개편되었다.
[의의와 평가]
1914년 군현 통폐합 시 용담군과 진안군이 합쳐져 진안군이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 용담군은 하나의 완전한 군 체제를 갖추고 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지금 진안에 두 개의 향교가 남아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용담군에 대하여 그 권역과 기능 및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진안군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