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68 |
---|---|
한자 | -中坪禊案- |
이칭/별칭 | 동계 수계기,송계 수계기,흥학계,장학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소장처 | 진안 역사 박물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내사양길 7[단양리 813] |
---|---|
성격 | 성책 문서 |
권책 | 3책 |
규격 | 세로 26㎝, 가로 26㎝[동계 수계기]|세로 26㎝, 가로 26㎝[송계 수계기]|세로 22㎝, 가로 25㎝[장학계 수계기]|세로 23.5㎝, 가로 28㎝[흥학계 수계기]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성수면 도통리 중평 마을의 계안.
[개설]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 마을에서 작성된 계안은 동계(洞契)와 송계(松契), 장학계(獎學契), 흥학계(興學契) 등 4가지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작성된 이들 계안은 원래 진안군 성수면 중평 마을 회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진안 역사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동계와 송계는 중평 마을의 질서 유지와 주민들 사이의 상부상조,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연료용 땔감과 퇴비 재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장학계와 흥학계는 중평 마을의 아동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기 위한 목적에서 조직되었다. 동계와 송계는 19세기 중엽 이전에 조직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행해졌으며, 장학계와 흥학계는 191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실시되었다.
[형태/서지]
문서의 크기는 동계와 송계의 수계기는 세로 26㎝, 가로 26㎝로 모두 149장이며, 장학계의 수계기는 세로 22㎝, 가로 25㎝, 흥학계의 수계기는 세로 23.5㎝, 가로 28㎝로 모두 95장이다. 이들 가운데 동계와 송계의 수계기는 1/3 정도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특히 동계와 송계는 1867년 이전과 1868년부터 1887년 사이의 계안이 전하지 않고 있다.
[구성/내용]
「중평 계안」에는 계회 년도와 유사 명단, 그리고 계금(契金) 납입 내용과 지출 내용 등이 실려 있다. 그러나 동계안과 송계안의 경우 19세기 후반의 유사 명단이 일부 전하지 않으며, 장학 계안은 1923년부터 1926년까지의 유사 명단이 없다. 그리고 동계안과 송계안에서 계금 납입은 식리(殖利)·수조(收租)·송가(松價) 등이, 계금 지출은 통신비·백지가·차일가(遮日價)·임야세 등이 각각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학계와 흥학 계안에서 계금 납입은 식리(殖利)·신입전(新入錢)·전답세(田畓稅) 등이, 계금 지출은 통신비·학동 필묵비·선생 학료·통신비·백지가 등이 각각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중평 계안」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진안 중평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 조직으로서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가를 경제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측면과 민속학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