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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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東屹神道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미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10년 - 전동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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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05년 - 전동흘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84년 - 가재 전동흘 신도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전동흘 이산묘에 배향 |
현 소재지 | 전동흘 신도비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내곡 어귀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전동흘 |
크기(높이,너비,두께) | 160㎝[높이]|58㎝[폭]|25㎝[두께]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내곡 어귀에 있는 전동흘의 신도비.
[개설]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에 있는 가재 전동흘 신도비는 조선 후기의 무신인 전동흘(全東屹)[1610~1705]의 신도비로 1984년에 건립되었다. 전동흘은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시대 명현 40위 중 한 사람이다.
[건립 경위]
전동흘 신도비는 1984년 건립되었다. 전동흘은 1610년(광해군 2)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부친이 순절하자 고향에 안장하고 3년간 시묘하였다.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시대 명현 40위 중 한 사람이다.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여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치]
전동흘 신도비는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내곡 어귀에 있다.
[형태]
전동흘 신도비는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로 귀부와 비신, 직사각형의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160㎝, 비신의 폭 58㎝, 비신의 두께 25㎝이다.
[금석문]
이산묘 앞에 있는 신도비 표면에는 ‘훈련대장 가재 전공 휘동흘 신도비(訓練大將嘉齋全公諱東屹神道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완산 최병심(崔秉心)이 짓고, 완산 이광렬(李光烈)이 쓴 ‘전동흘 신도비명’이 있다. 신도비명에는 전동흘의 가계 및 생몰년, 관직 생활, 활동 및 성격, 후손에 관한 내용이 있고 마지막에 명(銘)이 실려 있다.
[현황]
전동흘 신도비는 전동흘의 묘소 가는 어귀에 세워져 있으며 천안 전씨 종친회에서 신도비와 재각, 묘소 등을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안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 전동흘은 조선 시대 명현으로 꼽힌다. 철산 부사 시절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준 인물로 유명하다. 실제 『장화홍련전』 한문본은 전동흘의 8대손인 전기락(全基洛) 등이 1865년에 편찬한 「가재사실록」과 「가재공실록」에 실려 있으며, 국한문본은 「광국 장군 전동흘 실기」에 실려서 진안읍 가림리 일대에 살고 있는 후손들에 의해 전해오고 있다. 이렇게 국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인 전동흘의 신도비는 진안의 지역적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문화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