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군과 용마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71
한자 -辛將軍-龍馬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0년 - 「신장군과 용마혈」 이야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신장군과 용마혈」 『진안 군사』에 수록
채록지 군상리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지도보기
성격 아기장수 형 광포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신현충[신장군]|누이|어머니|청년들|관군
모티프 유형 아기장수|오뉘 힘겨루기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전해오는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소년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개설]

진안군에서 전해오는 「신장군과 용마혈」 이야기는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서 1970년에 채록된 것이다. 내용상 진안군 정천면에 소재한 ‘신현충 굴’과 ‘신장군 묘’라는 구체적 증거물을 제시하고 있는 전설이다.

「신장군과 용마혈」은 전설 중에서도 특이성을 보이는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설은 시대가 특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점이 증거물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정보의 구체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신장군과 용마혈」은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망덕에 산 신현충’이라거나 ‘용담교 서쪽에 있는 층암절벽의 신현충 굴’, ‘망덕 뒷산’, ‘황산리의 용마혈’, ‘정천 월평리 뒷산에 있는 장군무답족답월혈의 신장군의 묘’ 등 지리적 정보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전설적 인물이라기보다 역사적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정도의 구술 자료라면 실존 인물을 전제로 추가 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설화적 측면에서도 「신장군과 용마혈」은 ‘아기장수 설화’에서 파생되었으면서도 유아기가 언급되지는 않고 오히려 그 이후의 성장기[소년 또는 청년]에 일어난 역모 사건으로 설정되거나, 관군이 신장군의 어머니를 간악하게 이용하는 대목으로 보아 아기장수 설화보다 훨씬 극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혈 질러서 장수 나지 못하게 하기’ 모티프를 끌어들여 역적은 조상도 후손도 가리지 않고 멸문지화를 당해야한다는 왕조의 분노까지 표출함으로써 충격적 결말을 도출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신장군과 용마혈」 이야기는 1970년에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서 채록하여 진안군에서 편찬한 『진안 군사』[1992]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 정천면 모정리 망덕에 신현충이란 소년이 살았다. 그는 지주의 아들로 글보다 무예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명절에 열리는 씨름판에서 황소를 몰아오곤 했다. 망아리 자금 부락에는 신현충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활터가 있다. 신현충은 누이와 대결을 하였는데, 누이에게 동구 밖 우물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오도록 하고, 그는 수 백보 떨어진 사랑마루에서 물동이를 명중시켰다. 또 누이에게 활을 쏘도록 하고 자기는 말을 몰아서 화살보다 먼저 과녁을 통과하는 내기를 하였는데, 말이 화살에 미치지 못하자 말의 목을 베어 죽였다고 한다.

신현충은 젊은이들을 모아 사냥 놀이와 농악 놀이를 하였는데, 흡사 군사 훈련처럼 보였다. 그러자니 지역 관아에서는 그 기세에 공포를 느꼈으며 나중에는 한양까지 소문이 퍼졌고, 틀림없이 역모를 할 것이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결국 조정에서는 군병을 출동시켜 토벌에 나섰으며, 수백 명의 청년들은 이리저리 쫓기다 용담교 서쪽에 있는 층암절벽의 암굴에 피신하였다. 대치하던 관군은 꾀를 내어 신현충의 어머니를 잡아다 아들이 내려다보는 곳에서 말꼬리에 매달고 처참하게 끌고 다녔다. 신현충은 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견디다 못해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산허리에 있는 암굴을 신현충 굴이라고 한다.

조정에서는 신현충의 자결로 일을 매듭짓지 않고 역적에 대한 형벌로 그의 선산을 파헤치고 산맥을 숯불로 지져댔다. 이는 후대에라도 역적이 나지 못하도록 명당이라 일컫는 무덤 자리를 숯불로 뜨는 행위이다. 그런데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 뒷산에 있는 장군무답족답월혈(將軍無踏足踏月穴)을 파묘하려고 할 때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퍼부어 모두 놀라 도망하였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그곳을 신장군 묘라고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신장군과 용마혈」 이야기에는 ‘아기장수’, ‘오뉘 힘겨루기’, ‘명당 풍수’ 모티프가 변형되거나 착종되어 등장하고 있다. 먼저 아기장수 모티프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광포 설화이지만, 진안군에서 채록된 「신장군과 용마혈」은 그것에서 변형된 형태를 보인다. 둘 다 비범함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아기장수에서는 갓 태어나거나 유아 시절에 그 비범함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만, 신장군 설화는 어느 정도 성장한 소년 또는 청년 시절의 비범함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원인이 ‘그 비범함으로 보아 국가의 질서에 도전할지도 모를, 즉 역적이 될 수 있어서’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모티프라고 볼 수 있다.

「신장군과 용마혈」에는 오뉘 힘겨루기 모티프가 등장하는데, 이 모티프는 본격적인 모티프라기보다는 인물의 비범함을 드러내기 위한 추가적 에피소드 정도로 다소 약화되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설화의 주요 플롯이 ‘역적 신장군’으로 진행되어야 하기에 신장군이라는 인물의 비범함을 굳이 장황하게 나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전설에서 오뉘 힘겨루기 모티프마저도 불완전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명당 풍수에 관한 모티브는 ‘혈 질러서 장수 나지 못나게 하기’이다. 이로 보아 세습 왕조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봉건 사회의 삼엄함이 얼마나 포악하였는지, 또 백성들은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설화라고 하겠다. 이 모티프의 일반적인 예는 “큰 인물이 나는 명소가 있었다. 그 정기를 막으려는 사람이 쇠말뚝으로 산의 혈을 끊었다. 혈을 끊자 그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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