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충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70
한자 -辛彦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3년 12월 5일 - 「신언충 이야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신언충 이야기」 『진안 지방의 구전 설화집』에 「역적 신언충」과 「신언충이 자기 아버지의 사지를 갈라서 묘를 쓰다」라는 제목으로 수록
채록지 대곡리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대곡리
성격 광포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신충언|누이|어머니|군졸
모티프 유형 오뉘 힘겨루기|아기장수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전해오는 신언충이 누이와 대결을 펼치고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는 이야기.

[개설]

진안군에서는 ‘신언충’에 관한 설화가 세 편이 조사되었다. 내용을 볼 때 누이와 대결을 펼치는 대목과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공통으로 등장하는 반면, 두 편에서는 명당 풍수와 연관되면서 작품이 마무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장군과 용마혈」 설화에서는 역적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신언충의 선산을 모두 파헤치고 숯불로 지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나고, 「신언충 이야기」에서는 신언충이 조상의 음덕을 볼 요량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넷으로 잘라서 네 곳에 각각 매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장면이 전승 과정에서 삽입되는 것은 역적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키거나, 역적 신언충의 괴기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언충 이야기」 또는 「역적 신언충」 설화는 내용상으로 볼 때 ‘옛날 정천면 모정리 망덕신언충이 살았다.’ 또는 ‘황산리의 용마 혈’, ‘용담교 서쪽에 있는 층암 절벽’ 등 다수의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 비록 전설이라는 것이 그 구체적인 증거물을 드러내는 성격이 강하다고 하지만, 신언충과 관련된 전설은 마치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구체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1589년 기축옥사 사건, 이른바 ‘정여립 모반 사건’ 때 정여립이 자결한 곳이 진안군 죽도라는 측면에서 이 지역에 신언충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 전설이 유포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실존상의 인물인지 여러 의문점을 던지는 설화로 여겨진다.

[채록/수집 상황]

「신언충 이야기」는 2003년 12월 5일에 진안군 부귀면 대곡리에서 황인덕이 주민 조낙주[남, 77세]로부터 채록하여 『진안 지방의 구전 설화집』[진안 문화원, 2003]에 「역적 신언충」과 「신언충이 자기 아버지의 사지를 갈라서 묘를 쓰다」라는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채록 당시 제보자는 마이산솟금산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함께 남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진안의 여러 전설에 대하여 비교적 많이 알고 있었는데, 명당에 관한 설화도 여러 편 제보해 주었다. 명당 이야기가 끝나자 진안군에서는 충신과 같은 특기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역적 이야기나 해보겠다며 「신언충 이야기」를 구연하였다.

[내용]

옛날에 신언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잘 생긴데다가 재주가 독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선영의 음택 발원을 입겠다고 아버지의 사지를 넷으로 찢어서 각각 묘를 썼다. 그때 누이는 묘를 거꾸로 써야 한다고 했지만 신언충은 듣지 않았다.

하루는 신언충이 누이와 대결을 하였다. 하루 동안 누이는 베를 짜서 도포를 짓는 것이고, 신언충은 새[억새]를 베어다 선산에 입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결에서 지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기로 하였다. 누이는 도포를 거의 다 짓다가 차마 남자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지막 동정을 달지 않았다. 동생은 자기가 이겼다며 누이의 목을 잘랐다.

신언충은 군졸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성을 쌓다가 조정으로부터 역적으로 몰렸다. 신언충은 군사들에 쫓기다 용담에 있는 암굴로 숨고 바위로 묻을 막았다. 조정에서는 신언충의 어머니를 끌고 와 말꼬리에 매단 뒤 만약 나오지 않으면 말을 몰겠다고 위협하였다. 결국 신언충은 암굴에서 나와 죽임을 당하였다. 지금도 정천면 여의실 앞에는 쌓다만 성이 남아 있고, 정천면 모정리 앞에는 말을 몰고 가다 쉬었다는 곳이 전해지고 있다.

신언충을 죽인 조정에서는 사지를 나누어 매장한 묘를 전부 파묘하였는데, 이때 묘에서 검은 말이 일어서려다 파르르 사라지거나, 검은 소가 일어서려다 사라졌고, 또 상전면 월평들 묘소를 파려고 하니까 뇌성벽력이 쳐서 결국 파지 못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신언충 이야기」에는 ‘아기장수’, ‘오뉘 힘겨루기’, ‘명당 풍수’ 모티프가 변형되거나 착종되어 등장하고 있다. 먼저 아기장수 모티프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광포 설화인데 진안군에서 채록된 「신장군과 용마혈」 전설은 그것에서 변형된 형태를 보인다. 둘 다 비범함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기장수에서는 갓 태어나거나 유아 시절에 그 비범함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만 신장군 설화는 어느 정도 성장한 소년 또는 청년 시절의 비범함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원인이 ‘그 비범함으로 보아 국가의 질서에 도전할지도 모를, 즉 역적이 될 수 있어서’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모티프라고 볼 수 있다.

「신언충 이야기」에는 「신장군과 용마혈」 설화처럼 ‘오뉘 겨루기’ 모티프가 등장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오뉘 겨루기’에서는 어머니의 부당한 간섭으로 아들이 이김으로써 남존여비 사상을 은연 중에 주입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목숨을 건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간섭도 없이 누이가 자발적으로 져준다. 이는 여성의 자발적 순종과 희생이라는 측면을 묘사하여 남아 선호 사상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당 풍수에 관한 모티프는 ‘혈 질러서 장수 나지 못나게 하기’이다. 이로 보아 세습 왕조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봉건 사회의 삼엄함이 얼마나 포악하였는지, 또 백성들은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설화라고 하겠다.

그런데 「신언충 이야기」는 명당 음택을 얻고자 아버지의 시신을 넷으로 찢는 패륜을 보이면서도 작품 후반부에 조정에 의해서 파묘를 당할 때는 ‘아기장수’ 설화에서 보이듯 검은 말과 검은 소가 일어서려다 사그라짐으로써 신언충에 대한 민중들의 복잡한 심경을 담아내고 있다. 즉 사지를 찢을 정도의 극악무도한 역적이라는 부정적 캐릭터와, 주인을 잃은 검은 말이나 검은 소의 소멸을 통해서 보이려고 했던 아기장수라는 비극적 캐릭터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음이 그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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