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금산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63
한자 -束金山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집필자 김월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2월 3일 - 「속금산 유래」 채록
관련 지명 마이산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천지탑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관련 지명 금당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금당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채록지 덕현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이성계
모티프 유형 조선 왕조 창업|비보 풍수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속금산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전해오는 「속금산 유래」는 조선 창업을 준비하던 이성계가 ‘목(木)’이 들어 있는 자기 성씨와 마이산의 금 기운이 상극이라서 자신이 임금이 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방비하려고 산의 이름을 속금산(束金山)으로 명명했다는 산 이름 유래담이다. 속금산솟금산은 모두 현재의 마이산에 얽힌 전설이지만 이 설화는 솟금산 전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채록/수집 상황]

「속금산 유래」 이야기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이 2010년 2월 3일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우곤[남, 81]로부터 채록하여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에 「이성계가 금을 묶기 위해 이름 붙인 속금산」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웹 서비스에서 조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내용]

현재 마이산으로 일컬어지는 산은 기록에 보면 통일 신라 시대에 서다산(西多山), 고려 시대에 용출산(龍出山)이라고 했고, 현지에서는 천지봉 또는 문필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산을 흔히 솟금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솟아오른 산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성계속금산(束金山)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조선 건국을 준비하던 이성계는 ‘목(木)씨’ 성인데 이 산은 ‘금(金)’이라서 목금이 상극이므로 임금이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기운을 막기 위해서 금에 해당하는 이 산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는다는 뜻으로 ‘속금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이 산을 속금산으로 명명한 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어서 산에 천지탑을 쌓고, 금이 굴러오다가 빠지도록 금당사 앞에 못을 파 놓았다고 한다. 이 못은 원래 금동골인데 못을 판 이후로 금당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방비를 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 오백년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속금산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이성계의 조선 왕조 창업’과 ‘비보 풍수’이다. 이성계의 조선 창업에 얽힌 설화들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조선 왕조 창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미연에 대비함으로써 조선 왕조가 성립될 수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조선 창업의 정당성을 풍수적으로 지지한 설화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속금산’이라는 명칭으로 지명 비보를 하고, 천지탑이나 금당사로 풍수 비보를 함으로써 조선 왕조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는 전제에는 풍수지리의 방어적 관념이 잘 드러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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