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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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濟亮 |
이칭/별칭 | 성필(聖弼),인봉(麟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정현 |
[정의]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개항기 의병.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통정대부 용양위 부호군 고휘진(高輝鎭)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활동 사항]
고제량(高濟亮)[1864~1907]은 족손(族孫)인 고광순(高光洵)과 어린 시절부터 뜻을 같이하고 의병을 일으킬 때에도 고락을 함께하였다. 1906년 4월에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林炳燦)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창으로 진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최익현을 찾아 갔다. 하지만 최익현의 의진은 패전하여 20여 명과 함께 서울로 압송된 후였다. 이들은 다시 기우만(奇宇萬), 백낙구(白樂九)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언약하였지만 누설되어 기우만과 백낙구가 모두 붙잡혀 갔다. 결국 독자적으로 의병 활동을 할 것을 결정하고 고광순을 주장으로 추대하고 고제량 자신은 부장(副將)이 되어 창평 저산(猪山) 분암(墳庵)에서 창의의 기치를 들었다. 끝까지 함께 활동하였고 마침내 지리산 및 구례 연곡사에서 탄환을 맞고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건국 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진안 이산묘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