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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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士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정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한사국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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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한사국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참모, 기실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3월 21일 - 한사국 사망 |
출생지 | 한사국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
활동지 | 한사국 활동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 |
위령비 |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결성지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8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활동 사항]
한사국(韓士國)[?~1908]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인품이 준수하고 강개심이 있었으며 문장에 아주 능하였다. 1907년 9월 12일에 이석용(李錫庸)의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입하였다. 1908년 4월까지 진안을 중심으로 장수, 임실, 순창, 남원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사국이 속해 있는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은 1907년 9월 13일 아침 진안읍 반월리에 이르러 주둔해 있던 일본군들을 습격하기 위해 진안읍 앞산에 있는 우화정에 본진을 쳤다. 그때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일본군을 향해 일제히 집중 포화를 가하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 하였다. 일본 헌병대장 호리구치 겐지로[屈口源次朗]는 왼팔에 총탄을 맞았고 다른 일본군들은 옷마저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전주로 도망쳤다. 습격 당시에 군율이 잘 시행되어 양민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없었고 격문을 만들어 사방으로 전달하였으므로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한사국은 전해산(全海山), 이광삼(李光三)과 함께 참모(參謀)로 활동하였고 전해산과 진중의 일을 기록하는 기실(記室)의 임무도 맡았다. 여러 유격 활동에서 참모로서 지략을 다하였다가 1908년 3월 21일 운현(雲峴)에서 일본군 토벌대의 기습을 받아 16명의 의사와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8년에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결성지비(湖南義兵倡義同盟團結成址碑)가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앞에 건립되었다. 이 비는 1907년 정재 이석용을 필두로 1,000여 명이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을 결성함으로써 호남 의병 운동의 효시된 것을 기리기 위한 비로서 이산 향토 문화 연구회 회장 오귀현에 의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