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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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成鶴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정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전성학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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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전성학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
위령비 |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결성지비 (湖南義兵倡義同盟團結成址碑)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8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개설]
전성학은 이석용(李錫庸) 의병대에 가담하여 진안·장수·임실·남원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활동 사항]
전성학(全成鶴)[?~?]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이석용이 지은 「격중가(激衆歌)」를 듣고 호남 의병창의 동맹단에 가입하여 김사범(金士範)·윤명선(尹明善)과 함께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격중가」의 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을 바람 소슬하니/ 영웅이 때를 만남이라/장사(壯士)가 없을소냐/구름 같이 모야[모여]든다/어화 우리 장사드라[들아]/격중가를 불러보새[세]/한양성중 바래[라]보니/원수놈이 왜놈이요/원수놈이 간신이라//삼천리 우리 강산/오백년 우리 종사 어찌할까/ 아마도 의병을 이러내켜[일으켜]/왜놈을 쪼차[쫓아]내고/간신을 타살하야[여]/우리 금상 봉안하고/우리 백성 보전하야[여]/삼각산이 숫돌되고/한강수 띠되도록/질[즐]기고 놀아보세/우리 대한 만만세
전성학은 진안, 장수, 임실, 남원 등지에서 후군장으로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전성학이 속해 있는 동맹단은 1907년 9월 13일 아침 진안읍 반월리에 이르러 주둔해 있던 일본군들을 습격하기 위해 진안읍 앞산에 있는 우화정(羽化亭)에 본진을 쳤다. 그때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일본군을 향해 일제히 집중 포화를 가하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였다. 일본 헌병대장 호리구치 겐지로[屈口源次朗]는 왼팔에 총탄을 맞았고 다른 일본군들은 옷마저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전주로 도망쳤다. 습격 당시에 군율이 잘 시행되어 양민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없었고 격문을 만들어 사방으로 전달하였으므로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상훈과 추모]
1907년 정재 이석용을 필두로 1,000여 명이 창의 동맹단을 결성함으로써 호남 의병 운동의 효시된 것을 기리는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결성지비(湖南義兵倡義同盟團結成址碑)가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8 이산묘 앞에 1998년 이산 향토 문화 연구회 회장 오귀현에 의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