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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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道鉉 |
이칭/별칭 | 도현(燾鉉),명옥(鳴玉),벽산(碧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대길 |
출생 시기/일시 | 1852년 - 김도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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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김도현 청량에서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김도현 함창, 태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김도현 창의 |
몰년 시기/일시 | 1914년 - 김도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김도현 건국 훈장 독립장[국민장] 추서 |
사당|배향지 | 진안 이산묘 영광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김해(金海) |
[정의]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별명은 도현(燾鉉), 자는 명옥(鳴玉), 호는 벽산(碧山).
[활동 사항]
김도현(金道鉉)[1852~1914]은 경상북도 영양군에 태어났다. 1895년 11월 단발령이 선포되자, 12월 1일부터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등지에서 유지호(柳止鎬)·권한모(權翰模) 등과 함께 이에 대처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1896년 1월 6일 유시연(柳時淵)과 함께 청량(淸凉)에서 의거한 뒤, 안동부로 가서 안동 의진과 합류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2월 16일에는 인근 7읍의 의진과 연합하여 함창과 태봉 등지에서 적과 접전을 벌여 10여 명을 포살하였다. 이후 강릉으로 나아갔고, 4월초에는 삼척에서 접전하였다. 고종 황제의 의병 해산 조칙이 내려지고, 이에 영남 의진이 해산되었으나 영양으로 돌아와 병영을 구축하고 입암(立巖)과 소청(小靑) 등지에서 접전하는 등 끝까지 항거하고자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것을 알고, 영남의 선비들과 상경하여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자결로 순국하려고 하였으나 동지들의 만류로 실패하고 귀향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 당시에는 이만도(李晩燾)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14년 11월 어머니가 사망하자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 나아가 유서와 절명시를 남기고 바다에 투신, 자살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벽산 선생 창의 전말(碧山先生倡義顚末)』은 당시 자신의 의병 활동 기록과 각지의 의병 항쟁에 대하여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한말 의병 활동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