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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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龜永 |
이칭/별칭 | 낙서(洛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청사(晴沙). 문정공(文靖公) 일계(逸溪)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할아버지는 김석기(金奭基)이고 아버지는 김종협(金鐘協)이다. 외할아버지는 천안(天安) 전명석(全明錫)이다.
[활동 사항]
김귀영(金龜永)[1884~1931]은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태어났다. 1910년부터 망국의 한을 품어오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전영상·오기열·황해주 등과 함께 군중을 모아 4월 6일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때 전영상이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마령면 강정리 주재소에 있을 때 습격하여 구출하였다. 후에 여러 선비와 더불어 회덕전(懷德殿)과 이산사(鎖山祠)를 창건하고 친친계(親親契)[연재 제자 모임]를 조직하였으며 군지(郡誌)와 도지(道誌)의 발행 사업에 종사하였다.
[묘소]
묘는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상월리 후록 곤향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