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79
한자 朴甫局
이칭/별칭 박보국(朴甫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오봉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박보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박보국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입
몰년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박보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박보국 건국 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박보국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박보국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근대 진안 출신의 의병.

[개설]

박보국(朴甫局)은 1907년 이석용 의진에 참가하여 보급책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후에도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활동을 계속하였다.

[활동 사항]

박보국(朴甫局)[1876~1951]은 진안군 성수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12일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맹하여 한규정·박금동과 함께 보급책임을 맡았다. 그 후 약 6개월 동안 의병 활동에 참가하던 중, 1908년 3월 21일 운현에서 일본군 토벌대의 기습을 받아 16명의 의사가 전사하고 2명의 의사가 생포될 때, 간신히 죽음을 면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험준한 산줄기를 타며 임실, 진안, 남원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박보국은 병합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도 의병장 이석용과 더불어 독립을 위한 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12년 10월 22일 이석용의 지시로 김필주·김운서와 같이 무장하고 장수군 내진면 월파리에 있는 면사무소에 돌입하여 공금 수금원인 이용구·육동기 및 면장 이순영을 구타하고 거둔 세금 133원과 면비 50원, 개인 소지금 28원 및 손금고 2점을 거두었다. 1912년 12월 밤에 임실군에 살고 있던 강정수의 집으로 찾아가 복부에 총격을 가하고 군자금을 거두었다. 본래 강정수는 일경의 앞잡이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구실로 군민들로부터 돈을 긁어모아 사복을 취하여 원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박보국은 1914년까지 지하 운동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광주 지방 재판소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5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 포장에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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