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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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雲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 김운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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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김운서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입 |
몰년 시기/일시 | 1929년 - 김운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김운서 건국 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운서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김운서 출생지 - 충청남도 논산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이석용 의진 중군장 |
[정의]
개항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김운서(金雲瑞)[1879~1929]는 1907년 10월 10일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진안 마이산에 제단을 세우고 고천제향(告天祭享)한 후 기의하자 이에 합세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었고, 의병과 군기를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9월 25일 이석용을 도와 전라북도 임실군·장수군·남원시·함평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핵심 부장들의 전몰과 군기 및 인원의 열세로 인하여 의병 진영이 해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김운서는 계속하여 남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활동하였다.
1912년 10월 22일 박보국·김필수 등과 함께 남원군 내진전면[현 장수군 산서면] 면사무소에 쳐들어가 공금 수금원 3명과 면장 이순영을 구타하고 거두어 놓은 세금 133원 70전, 면비 50원 44전, 개인 소지금 28원 82전 등 모두 212원 96전과 손금고 등을 빼앗아 의병 자금을 마련하였다.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임실군 남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에 건국 포장 추서되었으며, 1990년에는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