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39 |
---|---|
한자 | 姜利誠 |
이칭/별칭 | 퇴헌(退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허인욱 |
사당|배향지 |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晋州) |
대표 관직|경력 | 어모장군 예빈시 별좌 |
[정의]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퇴헌(退軒). 대제학(大提學)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손자로 병조 참판(兵曹參判) 강안복(姜安福)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씨로 이효례(李孝禮)와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씨족원류(氏族源流)』에는 혼례를 두 번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실은 성문치(成文治), 후실은 이백창(李伯昌)의 딸이다. 선실과의 사이에서 2녀, 후실과의 사이에서 강황(姜潢)을 두었다.
[활동 사항]
강이성(姜利誠)[?~?]은 경학 특히 성리학에 정진하여 예로써 자기 자신을 단속하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남효온(南孝溫), 김시습(金時習), 조려(趙旅) 등과 도의의 교분을 맺었다. 벼슬은 어모장군(禦侮將軍) 예빈시 별좌(禮賓寺別座)에 이르렀다. 『씨족원류』에는 최종 관직이 통찬(通贊)으로 되어 있다.
간흉이 판을 치고 여러 대군들이 강성하여 단종이 임금 자리를 내어놓게 되는 어지러운 정국이 되자,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고 관직에서 물러나 ‘퇴헌’이라 자호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으며 세상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