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09
한자 全繼宗
이칭/별칭 계종(繼宗),백윤(伯胤)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16년연표보기 - 전계종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전계종 사망
출생지 전계종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지도보기
묘소 전계종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거사곡 자좌원
성격 의병|문인
성별
대표 경력 승문원 습독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 의병.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휘는 규암(葵菴), 자는 백윤(伯胤). 고조할아버지는 호조 판서를 지낸 전극례(全克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전자온(全自溫)이고 부사(府使) 할아버지는 전익희(全益禧)이다. 아버지는 참봉 전찬(全瓚)이고 어머니는 천녕 유씨(川寧兪氏)로 현감 유계해(兪啓諧)의 딸이다. 부인은 거창 신씨, 남원 양씨이다.

[활동 사항]

전계종(全繼宗)[1516~1592]은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에 승문원 습독(習讀)의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는데 여진족의 침략 소식을 듣고 진사 류사성(柳士誠)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난이 평정되었음을 듣고 바로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창(江昌)의 옛 마을로 돌아와 암자를 짓고 살았다.

다시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는 이미 늙고 쇠약하여 의병을 일으켜 싸움터로 달려갈 힘조차 없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비분강개하여 “내가 벌써 국난에 종사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죽는 한이 있어도 선영(先塋)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하며, 노구를 이끌고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거사곡(居士谷)의 묘막(墓幕)으로 들어가 통곡하면서 지냈다. 사흘째가 되던 날, 왜군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칼로 협박하였으나 의연하게 대처하며 오히려 크게 꾸짖다가 칼날에 쓰러졌다.

[묘소]

묘는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거사곡의 자좌원(子坐原)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인조 때에 공조 참의에 증직되었고, 서원을 세워 제사 지냈다. 민여로(閔汝老)가 찬하고, 신응삼(申應三)이 글씨를 쓴 묘갈명이 있고, 또 조중목(趙重穆)이 글을 짓고, 유진찬(兪鎭贊)이 전액(篆額)을 쓰고, 이선호(李璇鎬)가 글씨를 쓴 묘갈명 병서(墓碣銘幷序)가 있다.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영계 서원(靈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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