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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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瑩均 |
이칭/별칭 | 진명(眞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지 | 전영균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중앙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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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전영균 거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중앙동 |
활동지 | 전영균 활동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우화동 남쪽 우화산(羽化山)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일제의 조선 침탈로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이에 저항하기 위해 의병들과 연계해 활동하다가 죽임을 당한 우국지사이다.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진명(眞明).
[활동 사항]
전영균(全瑩均)[?~?]은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중앙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진안군의 부군수(部郡守) 급 직위로 근무하던 중 1910년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하려는 낌새가 엿보이자 이에 반대하여 당시 진안읍 군상리 우화동 남쪽에 있는 우화산(羽化山)에 주둔하며 활동을 하던 의병들과 물질적·정신적으로 비밀리에 협조하여 대일 항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전영균의 활동을 알아차린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 당해 현재 신사당 당산목 근처의 나무에 매달린 채 불에 타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