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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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審問 |
이칭/별칭 | 신숙(愼叔),청재(靑齋),충정(忠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408년 - 박심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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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6년 - 박심문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47년 - 박심문 평안도 판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박심문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옴 |
몰년 시기/일시 | 1456년 - 박심문 사망 |
사당|배향지 | 대한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密陽) |
대표 관직 | 질정관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靑齋), 시호는 충정(忠貞). 할아버지는 박침(朴忱)이고 아버지는 박강생(朴剛生)이며, 어머니는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심문(朴審問)[1408~1456]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이 되었고, 1436년(세종 18)에 친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기주관(記注官)으로 있다가 함길도 절도사 김종서(金宗瑞)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종사관(從事官)으로 보필하였다. 이때 박심문은 야인(野人)[여진족]에 대한 안무책(安撫策)으로 남쪽 지방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할 것을 절도사에게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447년에 평안도 판관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도체찰사(道體察使)의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 때 김종서 등이 살해되자 크게 분개하여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밀히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 등과 왕래하면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질정관(質正官)으로 명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조 때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후에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