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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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濠鎭 |
이칭/별칭 | 찬증(燦增),모와(慕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허인욱 |
출생 시기/일시 | 1779년 - 임호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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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24년 - 임호진 흥학계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836년 - 임호진 흥학당 설립 |
몰년 시기/일시 | 1847년 - 임호진 사망 |
출생지 | 임호진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
수학|강학지 | 임호진 수학지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흥학당 |
묘소|단소 | 임호진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지사거리촌 부귀산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나주(羅州) |
대표 관직|경력 | 흥학계 조직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찬증(燦增), 호는 모와(慕窩).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임기원(林起遠)이다. 고조할아버지인 부제학 임영(林泳)이 정천면 조림리에 우거하면서부터 나주 임씨가 대대로 거주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임호진(林濠鎭)[1779~1847]은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에서 태어났다. 1824년(순조 24) 4월 교육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흥학계(興學契)를 조직하였다. 그 후 돈과 곡식을 모아 처소를 마련하였다.
1836년(현종 2)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국사봉 기슭 나주 임씨 절도공계 용담 종중 소유 땅에 흥학당이라는 서당을 세워 누구나 공부를 원하는 사람은 무료로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10여 년 간 후진 양성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아들 임철한(林澈漢)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장학계를 더욱 확장시켜 지방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묘소]
묘는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지사거리촌 부귀산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