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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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秉烈 |
이칭/별칭 | 덕윤(德潤),송취(松翠)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안자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허인욱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허병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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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6년 - 허병열 문묘 중수 관리 |
출생지 | 허병열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안자동 |
수학|강학지 | 용담 향교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하양(河陽) |
대표 관직|경력 | 용담 향교 전교 |
[정의]
진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덕윤(德潤), 호는 송취(松翠).
[활동 사항]
허병열(許秉烈)[1899~?]은 진안군 안천면 안자동에서 태어났다. 용담 향교에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3대에 걸쳐 전교(典校)와 유도 회장을 연임하였으며, 1956년에는 문묘를 중수하고 지키고 관리하였다. 비록 가세는 빈한하였으나 전통적인 유가의 가풍을 이은 선비로서 유풍의 진작과 청빈의 정도로 일생을 다하였다.
허병일의 아내 의성 정씨(義城丁氏)도 시부모 섬기기에 솔선수범하였으며, 병으로 위급한 시부모에게 손가락에 피를 내어 마시게 함으로써 연명시켰다고 한다. 1961년 4월 사림(士林)들이 의성 정씨를 효행으로 진안 군수 김윤철(金允喆)에게 천거하여, 군수가 부인를 표창하였고 다시 문교부 장관에게 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