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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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錫河 |
이칭/별칭 | 석규(錫奎),자관(子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송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은 석규(錫奎), 자는 자관(子觀), 호는 국헌(菊軒). 충익공 조문택(曺文澤)의 후손으로 지정(池亭) 조상학(曺尙學)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조석하(曺錫河)[1791~1859]는 진안군 마령면 송내리에서 태어났으나 1819년 완주군 비봉면 월곡리로 이사하여 살았다. 기상이 비범하여 어려서부터 호학의 기질이 있어서 가전의 학문을 이어받고 경서 외에도 『주자대전』·『성리대전』·『근사록』·『율곡전서』 등도 깊이 탐구했다. 또 국로대(菊露臺)를 쌓아 노호를 쓰지 않고 존명(尊明)의 뜻을 보이며 후진을 육성하였다.
호남의 유림들이 조석하를 관찰사 정범조(鄭範朝)에게 천거하여, 1854년(철종 5) 조정에서 학행으로 천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저서는 8책이나 되었는데 화재로 유실되었고 그 뒤 여기저기 필사하여 모은 『국헌집(菊軒集)』 3권 2책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