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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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周 |
이칭/별칭 | 백방(伯方),백공(伯公),숙재(肅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백방(伯方)·백공(伯公),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간숙(簡肅). 할아버지는 도관 정랑(都官正郎) 허윤창(許允昌)이고, 아버지는 판도 판서(版圖判書) 허귀룡(許貴龍)이며, 어머니는 통례 부사(通禮副使) 이길(李吉)의 딸이다. 아들은 공간공(恭簡公) 허성(許誠)이고, 동생은 좌의정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이다.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는 하양 허씨들의 대표적인 세거지이다.
[활동 사항]
허주(許周)[1359~1440]는 문과에 급제해 전법 정랑(典法正郎)에 오르고, 1385년(우왕 11) 지양주사(知襄州事)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쌓았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세력의 전제 개혁에 참가하였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내부 경(內府卿)에 임명되었으며, 인척들이 고위 관직을 점유함으로써 조선의 거족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도청사(都廳使), 판사수감사(判司水監事), 지형조사(知刑曹事)를 지냈고 1409년에는 전라도 관찰사에 올랐다. 이듬해 참지의정부사, 한성 부윤,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낸 뒤 병으로 사직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해 공사를 분명하게 처리하였다. 가법(家法)이 엄격해 사당의 모든 행사를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좇아 행하였다. 후손들에게 “충효공검 성신화혜(忠孝恭儉 誠信和惠)”라는 유훈을 남겨 전승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
김제 벽성 서원, 함양 정산 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