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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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叔男 |
이칭/별칭 | 경숙(敬叔),송재(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사당|배향지 |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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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의(全義) |
대표 관직|경력 | 나주 판관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유학자.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敬叔), 호는 송재(松齋).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의 후예로 금부도사(禁府都事) 이근인(李根仁)의 아들이다. 정숙공(貞肅公) 이탁(李鐸)이 재종형이다.
[활동 사항]
이숙남(李叔男)[?~?]은 자품(資稟)이 매우 높고 재기(才氣)가 영오(穎悟)하여 어려서부터 독서함에 문의(文義)가 밝았으며 효행이 있었다. 재종형되는 정숙공(貞肅公) 이탁이 언제나 말하기를, “우리 집안에서 장래에 제일 촉망되는 사람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삼각산 기슭에 ‘송재(松齋)’라는 서실을 지어 온갖 시서(詩書)를 갖추고 매일 연구 생활을 계속하되 만약 의심이 나는 구절이 있으면 현사(賢師)를 찾아가 물어 도리에 밝았다.
숨은 선비로 도백(道伯)의 천거를 받아 참봉(參奉)을 제수 받은 바 있고 임실 현감(任實縣監)을 거쳐 나주 판관(羅州判官)에 부임하여 절용(節用)·애민(愛民)·양사(養士)·숭덕(崇德)을 베풀어 많은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는 양주(楊州)에 돌아와 여러 학도(學徒)를 거느리고 강학(講學)으로 일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역에 세거하여 이산묘 창건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