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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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泳 |
이칭/별칭 | 덕함(德涵),창계(滄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유학자.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할아버지는 상주 목사를 지낸 임타(林㙐)이고 아버지는 군수 임일유(林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 조씨(林川趙氏)로 조석형(趙錫馨)의 딸이다.
[활동 사항]
임영[1649~1696]은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였고,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하였다. 1679년 정언, 부수찬, 교리를 역임하고, 1686년 이조 정랑, 이조 검상, 부제학, 대사헌,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에 대사간, 개성부 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부제학으로 있을 때 병이 들어 약물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 뒤 참판에까지 이르렀다.
원래 나주 회진(會津)에서 출생하였으나, 할아버지가 금산 현령으로 있을 때 용담에 만화정(萬花亭)을 짓고 스스로 ‘화산(花山)에 사는 사람’이라고 칭하였던 것을 연유로 용담현 조림리[현 진안군 정천면 원조림리]에 우거하게 되었다.
[학문과 저술]
이단상·박세채의 문인으로,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였다.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하였고,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았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뒤에 송시열·송준길에게도 수학하여,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하였다.
저서로는 『창계집』 27권이 있다.
[묘소]
묘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나주의 창계 서원(滄溪書院)과 함평 수산사(水山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