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25
한자 全惠
이칭/별칭 죽재(竹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사당|배향지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천안(天安)
대표 관직 공조 판서

[정의]

진안 이산묘 영묘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죽재(竹齋).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의 후예로 아버지는 현감 전만(全蔓)이다.

[활동 사항]

전혜(全惠)[?~?]는 성종 때 문과에 뽑혀 내직과 외보를 두루 거쳤는데, 옥과(玉果) 현감으로 있을 때 전라 감사 이극돈(李克墩)성종의 초상에도 불구하고 국휼(國恤)하지 않고 매일 잔치를 즐기는 것을 보아 전혜가 소인(小人)됨을 직언하였다.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연산군 때 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에 나아갈 뜻을 잃고 집 뒤에 몇 칸 초당(草堂)을 짓고 세상일을 한탄하며, 문미(門楣)에 ‘죽재(竹齋)’라고 액호를 달았다. 그후 두문불출하는 생활을 하며 세상을 마쳤다.

[학문과 저술]

전혜(全惠)는 어려서부터 빼어났고 재주가 비범하여 스승 앞에 나아가 공부할 때에도 여러 아이들과 섞여 놀지 않고 혼자서 온종일 공부하였다. 약관에 문명(文名)을 크게 떨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도의를 나누며 지내는 사이였다.

[상훈과 추모]

중종반정 때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증직되었고, 진안 이산묘 영모사(永慕祠)에 배향되었다.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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