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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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生員進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용담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시대 진안군에 거주하면서 생원시 또는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
[개설]
조선 시대의 과거는 대과(大科)[문과(文科)], 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뉜다. 과거는 3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설되는 식년시(式年試)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치렀던 비정기시(非定期試)로 나눌 수 있는데, 비정기시에는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정시(庭試), 춘당대시(春塘臺試), 외방별시(外方別試) 등이 있었다. 이들 시험 가운데 식년시와 증광시에서는 문과와 무과 그리고 소과와 잡과가 모두 실시되었으나 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외방별시에서는 문과와 무과만 치렀다.
감시(監試)라고도 불렀던 생원시와 진사시는 1차 시험과 2차 시험으로 진행되었다. 1차 시험은 각 도별(道別)로 실시하였으며 도별로 정해진 인원이 있었다. 그리고 2차 시험은 반드시 서울에서 진행하였는데, 여기에는 물론 1차 시험에 합격한 자들만이 응시할 수가 있었다. 2차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는 최종 인원은 원칙적으로 진사시가 100명, 생원시 100명이었으나 때로는 그 수를 넘거나 혹은 밑도는 경우도 있었다.
[진안 출신의 생원과 진사]
조선 시대 500여 년 동안 배출된 생원과 진사의 수는 대략 4만 5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합격 당시의 거주지가 진안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모두 49명이다. 물론 49명 중에는 용담 출신도 포함되어 있다. 용담이 조선 시대에는 독립된 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진안으로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49명의 진안 및 용담 출신 생원 진사 가운데 합격 시기가 확인되는 사람은 절반이 조금 넘는 29명이다. 왕대별로 살펴보면 중종 대 2명, 명종 대 1명, 인조 대 3명, 효종 대 1명, 숙종 대 2명, 영조 대 2명, 정조 대 1명, 헌종 대 6명, 순조 대 1명, 고종 대 10명이었다. 고종 대가 가장 많은 수의 합격자가 배출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종 대에 이르러 선발하는 생원 진사의 수가 증가하였다는 점과 관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조선의 생원 진사 가운데 진안 및 용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합격자 수는 18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진안 백씨 1명, 진안 이씨 3명, 진안 장씨 3명, 용담 고씨 2명이었으며, 진사시 합격자는 진안 이씨 1명, 진안 장씨 4명, 진안 전씨 1명, 용담 고씨 1명, 용담 박씨 1명, 용담 염씨 1명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