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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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城里輔韓淸州韓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개설 시기/일시 | 1700년경 - 노성리 보한 청주 한씨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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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노성리 보한 청주 한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
성격 | 동족 마을 |
가구수 | 21가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청주 한씨 집성촌.
[개설]
청주 한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19만 9642가구에 64만 2,992명, 전라북도 9,371가구에 2만 8895명, 진안군에는 216가구에 593명이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보한 마을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창녕 성씨가 외약 고개 아래 서당 터에 자리 잡고 산 것이 기원이다. 보한이 한때 보성(保城)으로도 불린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창녕 성씨는 1대를 넘기지 못했고, 이후 같은 임진왜란 시기에 죽산 안씨가 들어오면서 이름을 보안이라 하였다. 그 뒤 1700년경 청주 한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면서 ‘한씨를 보필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보한(保韓)이라 했다고 한다.
노성리는 안천면에 소속된 법정리이며, 노양과 보성의 이름을 따서 노성리라 하여 진안군 안천면에 소속되었다. 그 뒤 용담댐 건설로 상보·하보·회곡·시장 마을은 수몰되었으며 보한·시장·안기·직동 등 마을이 이주민 등에 의하여 새로 조성되었다.
[형성 및 변천]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보한 마을에는 청주 한씨가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청주 한씨 중에서 진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양절공 한확(韓確)의 6대손인 무안 현감을 지낸 한유신(韓有信)이다. 한유신은 1601년(선조 35)에 서울에서 이 마을로 이주하였다. 그 뒤 1700년경 청주 한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자연 환경]
보한 마을은 안천면 동쪽 긑의 형제봉 끝자락에 위치한다. 형제봉 산줄기는 서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다가 달롱개재와 오얏 고개까지 이어지며 보한 마을 북동쪽을 감싸고 있다.
[현황]
2011년 보한 마을에는 72가구 16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21가구가 청주 한씨여서 준집성촌을 이룬다. 청주 한씨는 수몰된 하보와 상보에서 이주해 들어왔고, 시장 마을에서도 이주하였다. 보한 마을에는 청주 한씨 재각인 경모재(敬募齎)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