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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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珠坪里芝砂秋溪秋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집성촌 | 주평리 지사 추계 추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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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동족 마을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에 있는 추계 추씨 집성촌.
[개설]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지사 마을에는 추계 추씨와 문씨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추계 추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1만 2622호에 3만 9,994명, 전라북도 413가구에 1,352명, 진안군에는 27가구에 87명이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주평리는 상전면에 소속된 법정리로, 본래 진안군 탄전면 지역으로, 마을 뒤에 구슬같은 둥그런 산을 넘어가는 고개가 있고, 그 앞으로 흐르는 내의 주위에 들이 이루어졌으므로 구슬개, 구슬 고개, 주평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회사동, 가막치를 병합하여 주평리라 하여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으로 원주평이 수몰되고, 갈주 마을, 교동 마을, 문화 마을이 새로 조성되었다.
지사 마을은 예전에는 지세거리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마을이 피난처였는데 외부에서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고 해서 지세거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에 인민군들이 대덕산으로 피난가면서 마을 앞을 지나쳤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지사 마을에는 추계 추씨와 문씨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추계 추씨로 진안에 들어온 사람은 문헌공 추적(秋適)의 후손인 추애복(秋愛福)이 나주에서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로 이거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자연 환경]
높이 300m에 위치한 지사 마을은 높이 722m의 부귀산을 뒤로 하고 찬샘골과 큰용너메골에서 발원한 물이 원가막 마을 앞에서 합수하여 용담댐으로 흐르는 작은 하천을 앞에 끼고 있다. 하천과 마을 사이에는 들이 펼쳐져 있고, 하천 너머로는 연지 고개와 황새목골이 있는 작은 능선이 가로막고 있다.
[현황]
2011년 기준으로 지사 마을은 21가구만이 남아 있으며, 추계 추씨가 마을 주민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집성촌이다. 1960년대만 해도 마을 주민의 70% 이상이 추계 추씨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