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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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梁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양우량(梁友諒)을 시조로 하고 양상(梁相) 등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남원 양씨는 양우량(梁友諒)을 시조로 한다. 양우량은 본래 제주 양씨였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진 후 후손들이 양우량을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삼아 분적하였다고 한다.
[입향 경위]
진안에는 둔암, 만휴당, 문양공, 용성군 등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진안에 들어온 입향조는 세 갈래이다. 먼저 남원군 양영택(梁永宅)의 후손으로 진사 양홍표(梁鴻標)의 아들인 양상(梁相)이 1685년(숙종 11)에 금산에서 진안군 정천면 망덕리로 이주하였으며, 문양공 양성지(梁誠之)의 증손인 양윤하(梁允河)가 성수면 좌포리로, 용성군 양주운(梁朱雲)의 후손인 양재홍(梁在泓)이 1854년(철종 5)에 남원에서 주천면 주양리 주자천으로 이주하였다.
이외에 남원에 이주한 인물로는 증 병부 낭중 양능양(梁能讓)의 후손인 양도(梁道)가 순조 대 남원에서 진안읍 은천리로, 문양공 양성지의 후손인 양근수(梁根洙)가 동향에서 진안읍 은천리로, 용성군 주운의 후손인 양기일(梁基鎰)이 남원에서 백운면 두원리로, 구졸암(九拙庵) 양희(梁喜)의 후손인 양신영(梁信永)이 고종 대 남원에서 백운면 덕현리로, 문양공 양성지의 후손인 양주신(梁周臣)이 정조 대 곡성에서 백운면 상원산리로, 지제교 양준(梁俊)의 후손인 양하용(梁夏龍)이 남원에서 백운면 노촌리로, 혜강공 양팽(梁彭)의 후손인 양정영(梁廷永)이 영조 대 나주에서 마령면 제남리로 이주하였다.
[현황]
남원 양씨(梁氏)는 진안군 마령면 제남리, 백운면 노촌리, 백운면 덕현리, 백운면 두원리, 백운면 상원산리, 성수면 좌포리, 정천면 망덕리, 주천면 주양리 주자천, 진안읍 은천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 6만 7691호에 21만 8546명, 전라북도 5,890호에 1만 8170명, 진안군에는 145호에 422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하마치 서쪽 입구에 절의비와 유허비 등이 있으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동쪽 언덕에 남원 양씨가 효열비각이 있다. 주천면 닥박골에 경수재(敬修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