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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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노석 |
입향지 | 경주 최씨 최덕후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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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최치원 |
입향 시조 | 최덕후(崔德厚) |
[정의]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덕후(崔德厚)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최치원은 12세의 나이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18세에 빈공과에 급제하여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承武郞侍御史內供奉)을 지냈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 학사(侍讀兼翰林學士)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워 외직을 자청하여 태산(太山)[지금의 태인], 함양(咸陽), 부성(富城)[지금의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냈다. 그 후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자 난세를 비관하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계원필경(桂苑筆耕)』이 있다.
경주 최씨는 최치원 이후 26파로 분파되었으며 그 중 관가정 청파(觀稼亭淸派), 사성공 예파(司成公汭派), 화숙공 현우파(和淑公玄祐派), 광정공 단파(匡靖公鄲派), 정랑공 호파(正郞公灝派), 충렬공 광위파(忠烈公光位派) 등 6개 파가 주축을 이룬다.
[입향 경위]
진안에 들어온 경주 최씨는 문정공 최승로(崔承老)의 17세손인 최덕후(崔德厚)가 풍양에서 정천면으로 이거하였다. 이 외에도 진안에 우거하였던 경주 최씨로는 최치원의 후손인 최사룡(崔士龍)[경주에서 백운면 덕현리로 이거], 장사랑 최도일(崔道一)의 현손인 최상식(崔相植)[순천에서 부귀면 세동리로 이거], 또 다른 최치원의 후손인 최이봉(崔二鳳)[1924년에 익산에서 마령면 평지리로 이거] 등이 있다.
[현황]
진안군 정천면, 백운면 덕현리, 부귀면 세동리, 마령면 평지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경주 최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30만 4722호에 97만 6820명이, 전라북도에는 6,588호에 2만 1182명이, 진안에는 137호에 421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