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78
한자 慶州鄭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98년 - 정선 전라북도 진안군으로 입향
입향지 경주 정씨 정선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안자동
세거|집성지 경주 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안자동
성씨 시조 지백호(智伯虎)
입향 시조 정선(鄭璿)

[정의]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선(鄭璿)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경주 정씨는 우리나라 정씨(鄭氏)의 대종으로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신라를 구성한 사로(斯盧) 6촌 중의 하나인 자산 진지촌(珍支村)[옛 본피부(本彼部)] 촌장인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그 후손 중 본손은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공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이어졌으며, 지손 계통에서는 영일(迎日), 동래(東萊),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등 30여 성씨로 분관되어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중시조는 정진후(鄭珍厚)로 고려 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 상서 겸 군기시 윤(兵部尙書兼軍器寺尹)을 지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그를 득관중조(得貫中祖)로 하여, 본관을 경주로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경주 정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22명과 공신 3명을 배출하였다. 역사상 유명한 인물을 여럿 배출하였는데,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 노송정(老松亭) 정지년(鄭知年) 등이다.

[입향 경위]

진안에 들어온 입향조는 정선(鄭璿)이다. 정선은 충열공 정인조(鄭仁祚)의 후손으로 1598년(선조 30)에 진산에서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으로 들어와 살았다. 이 외에도 대제학 정지년(鄭知年)의 6세손으로 남원에서 성수면 신기리로 이거한 정선발(鄭善發)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현황]

경주 정씨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성수면 신기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9만 4465호에 30만 3443명, 전라북도에는 4,555호에 1만 4240명, 진안군에는 127호에 3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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