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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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址 |
이칭/별칭 | 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서지은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던 불교 사찰 터.
[개설]
절터는 사지(寺址)라고도 하며 사찰이 있었던 장소로, 사찰은 절 또는 사원(寺院), 가람(伽藍)이라고도 하는데 가람은 범어 Sangharama의 음역인 승가람(僧伽藍)의 준말로 승려가 수도하고 생활하는 장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이후 많은 사찰이 새로이 창건되기도 하였고 또한 전란 및 사상적인 이유로 폐찰이 되기도 하였다. 절터는 이러한 이유로 폐찰되어 과거의 융성했던 사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초석이나 유물만 남아 있는 곳이다.
[진안 지역 절터]
진안 지역의 절터의 대부분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건물의 터였던 곳에는 축대와 초석, 기와, 자기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 확인된 절터들은 문헌 기록상에 전하지 않는 곳으로 대부분 작은 암자나 소규모 절터로 이들은 지역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절터에 대한 발굴 조사는 당대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당시의 사찰의 규모, 불교문화의 수준이나 특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진안 지역의 불교 역사를 이해하는데 근거가 될 수 있다.
[진안 지역 절터 현황]
진안군에는 2004년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을 통해 11곳의 절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중 위치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절터는 모두 6곳이 확인되는데, 검단사 터, 내후사동 절터, 상양명 절터, 심원사 터, 정수암 터, 회사동 절터 등이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절터의 위치나 현황을 파악하였다. 중산리 절터나 안정동 절터는 구전으로만 전하고 있어 위치나 현황을 전혀 확인할 수 없으며, 수천리 절터나 옥거리 절터는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에 포함되어 현재 수몰된 상태이다.
내후사동 절터와 회사동 절터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이 각각 1기씩 확인된다. 내후사동 절터는 1971년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운산리 삼층 석탑이 있었는데 석탑은 현재 마을 입구에 옮겨져 있다. 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마을 사람들은 ‘신들린 탑’이라 칭하기도 하며 칭하기도 하며 정월 보름날 탑 주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고 한다.
회사동 절터에는 1976년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회사동 석탑이 절터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탑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내후사동 절터와 회사동 절터는 남아 있는 석탑이나 절터에서 확인되는 유물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 운영되다가 이후 폐사된 사찰로 추정된다.
또한 검단사 터, 상양명 절터, 심원사 터, 정수암 터 등은 지표에서 기와나 자기편등이 수습되는데 유물의 시기가 대부분 고려 시대~조선 시대에 해당되고 있어 이 시기에 운영되다가 폐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추후 이러한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절터의 창건 및 운영 시기, 규모, 성격 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며 진안 지역 불교 역사 및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