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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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樂里守坐洞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조인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8월 20일 - 삼락리 수좌동 유적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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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2월 4일 - 삼락리 수좌동 유적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 전주 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효자동 2가 900] |
성격 | 선사 복합 유적 |
양식 | 고인돌|주거지 |
크기(높이,길이,둘레) | 길이 220㎝, 너비 72㎝, 두께 24㎝[1호 고인돌 덮개석]|길이 880, 너비 690㎝[3-1호 묘역]|길이 805㎝, 너비 275㎝[3-2호 묘역]|길이 840㎝, 너비 630㎝[3-3호 묘역]|길이 1,150㎝, 너비 1,220㎝[4호 고인돌]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개설]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1998년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된다.
[위치]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마을에 있다. 구곡 유적의 남쪽으로, 서쪽으로 뻗은 300m의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며 지장산에서 발원하여 금강 본류로 흘러드는 하천과 접하여 자리한다.
[형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고인돌 8기, 돌널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방형계의 묘역을 갖춘 단독묘와 연접묘로 구별된다. 단독묘는 1호와 2호로 동쪽에, 3호와 4호는 연접묘로 서쪽에 구역이 구분되어 조성되었다. 3호와 4호는 각 3기의 고인돌이 연접하여 축조되어 있는 형태이다.
1호와 2호 고인돌은 파괴가 심하게 된 상태로, 덮개돌이 없고 하부 구조만 남아 있었다. 2기 모두 훼손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일정한 묘역을 설정하고 매장 주체부로 지상식 돌덧널을 축조하였다. 1호 고인돌의 석곽 규모는 220㎝, 72㎝, 24㎝이며 2호는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1호 돌널 내부에서 자리 달린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연접 무덤인 3호와 4호 고인돌은 각각 3개의 고인돌이 연접되어 3-1호·3-2호·3-3호, 4-1호·4-2호·4-3호로 명명되었다. 3호는 덮개돌이 없이 각각의 묘역이 연접되어 있었다. 3-1호 묘역은 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880㎝, 너비 690㎝이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널로 길이 160㎝, 너비 50㎝, 깊이 60㎝이다. 3-2호 묘역은 세장방형으로 3-1호 남쪽 경계석에 잇대어 축조되었고 규모는 길이 805㎝, 너비 275㎝이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덧널로 묘역의 북쪽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으며 파괴가 심한 편이다. 3-3호는 북쪽의 3-1호 고인돌과 연접되어 있다. 묘역은 장방형으로 길이 840㎝, 너비 630㎝가량 된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덧널로 3-2호 고인돌 남쪽 경계석에 잇대어 축조되었으며,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4호 고인돌 역시 3기의 고인돌이 연접되어 하나의 군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전체 길이 1,150㎝, 너비 1,220㎝이다. 4-1호 고인돌은 괴석형 덮개돌이 남아 있었고 덮개돌 아래 매장 주체부가 시설되어 덮개돌이 매장 주체부의 뚜껑으로도 사용되었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널이나 파괴가 심하다. 4-2호는 남쪽에 4-1호가, 동쪽에 4-3호가 연접되어 있는 형태로 묘역의 평면은 동·서로 긴 세장방형이다. 묘역의 남쪽 중앙에 장방형 덮개돌이 자리하고 있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널로 덮개돌이 뚜껑으로 사용된 4-1호와 같은 형태이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70㎝, 너비 50㎝, 깊이 60㎝이다. 4-3호는 덮개돌이 없이 매장 주체부와 묘역만 남아 있으며 유실이 심하다. 매장 주체부는 묘역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돌널무덤은 모두 3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지하식으로 1·2호는 일단 토광, 3호는 이단 토광을 파고 만들어졌다. 3호의 경우 묘광 안에 돌널을 안치하고 뚜껑을 덮은 다음 다시 그 위에 자연석을 깔고 다시 냇돌을 깐 다음 그 위에 원형으로 부석하여 묘역을 만든 형태이다. 출토 유물은 없다.
1기가 확인된 주거지는 평면이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으로 파괴가 많이 진행되었는데 송국리형 주거지로 추정된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394㎝, 너비 365㎝ 내외이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민무늬 토기 조각과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연접 무덤인 3호·4호 고인돌과 주거지는 송국리식 민무늬 토기·슴베 있는 돌화살촉·자루 달린 간돌검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송국리형 문화 단계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며, 단독 무덤인 1호·2호 고인돌은 연접 무덤인 3호·4호 고인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발굴 조사 후 용담댐 완공으로 인하여 수몰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한 지역 내에 단독 묘역 고인돌과 연접 묘역 고인돌이 각각의 구역을 설정하고 있다. 3개씩 연접되어 있어 공동 묘역을 이루는 경우 묘역 내에서 규모의 차이가 있다. 축조 시 계획적으로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변 지역인 삼락리 안자동 유적이나 삼락리 구곡 유적과 비슷한 양상으로, 삼락리 수좌동 유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