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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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龍里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산 135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유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2월 - 오룡리 고분 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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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2월 10일 - 오룡리 고분 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2월 24일 - 오룡리 고분 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
소재지 | 오룡리 고분 떼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산135 |
성격 | 고분 |
양식 | 굴식 돌방무덤|회곽 무덤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고분 유적.
[개설]
오룡리 고분 떼는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에 있는 고분 떼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 1기와 조선 시대의 회곽 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위치]
오룡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산135에 있다. 부귀 면사무소에서 부귀 우체국을 거쳐 10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부귀로로 우회전하여 500m 정도 이동하면 부귀 사거리이다. 부귀 사거리에서 정천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곧바로 가면 오룡리 오산 마을이 있다. 오룡리 고분군은 오산 마을에서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산을 따라 100m 남짓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는데, 이곳은 노령산맥의 정상에서 정자천까지 뻗은 동쪽 경사면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7년 2월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진안군 북서부 지역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던 중에 확인되었다. 당시 오룡리 고분 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 아니었다. 본래 형태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고, 일대가 오래전부터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 활동으로 인해 봉토가 유실되고 있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봉분의 동쪽을 뚫고 도굴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도 도굴갱을 통해 사람들이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는 진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석재가 필요하자 오룡리 고분의 천정석과 측벽석을 대대적으로 반출시켰다고 전한다.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1998년 12월 10일부터 12월 24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1기의 굴식 돌방무덤과 2기의 회곽 무덤 등 모두 3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굴식 돌방무덤은 통일 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형태]
1998년 조사된 1기의 굴식 돌방무덤은 생토면을 말각 장방형으로 파내어 움을 마련하고 그 안에 벽석의 3단까지만 지하에 묻히도록 축조된 형태이다. 돌방은 평면 형태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벽석은 3단까지 수직으로 쌓고 그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다.
벽석은 장방형 할석을 사용하고 가로와 모로쌓기 방식을 혼용하여 축조되었는데 벽석과 벽석 사이는 소형 할석 조각으로 메우고 그 위에 점성이 강한 점토를 발랐다. 아울러 벽석의 외부에는 벽석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대형의 할석을 모로쌓는 방식으로 두텁게 올려놓았다. 고분의 상단부가 유실되어 정확한 구조를 말할 수는 없지만 네 벽이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안으로 기울어지게 하게 천정부를 1매의 대형 석재로 덮었던 것으로 보인다.
돌방의 내부에는 동벽과 남벽에 붙여진 상태로 시상대(屍床臺)가 마련되어 있으며, 시상대가 마련되지 않은 석실의 바닥에는 작은 판석형 천석을 정연하게 깔고 그 사이에는 점성이 강한 점토를 발랐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호석이 둘려져 있는데 그 평면 형태는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원형을 띠고 있다.
오룡리 일대에는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고분이 더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봉토분의 위쪽으로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여러 곳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평면 형태가 장방형을 띠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민묘 구역과 밭의 경계에는 장방형의 석재가 노출되어 있거나 고분의 벽석에서 빼낸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상당량 쌓여 있다. 또한 주민들이 이곳을 고름장골[고려장골]이라 부르고 있는 점에서도 다른 고분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출토 유물]
유물은 대부분 도굴의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는데 석실 내부의 교란된 흙 속에서 청동제 뚜껑 있는 합 조각과 청동제 띠끝 꾸미개, 뒤꽂이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오룡리 고분 떼는 민묘가 여러 개 조성되고,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면서 고분들이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된 유적은 다시 흙으로 덮었고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시설이나 안내 시설 등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고분 떼의 일부만이 조사되어 유적 전체에 대한 성격 규명은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1998년 조사된 굴식 돌방무덤은 노령산맥 동쪽에서 발견되 사례가 많지 않은 통일 신라 시대에 축조된 무덤으로, 그 축조 시기는 7세기 후반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오룡리 고분 떼는 백제의 멸망으로 격변기에 처해 있었던 7세기 말엽 진안고원 일대의 시대상과 역사성을 밝혀주는 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