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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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地里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산 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유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 평지리 고분 떼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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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10월 27일 - 평지리 고분 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11월 26일 - 평지리 고분 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
소재지 | 평지리 고분 떼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산3 |
성격 | 고분 |
양식 | 고인돌|돌널무덤|구덩식 돌널무덤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고분 유적.
[개설]
평지리 고분 떼는 진안군 마령면에서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개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고분 떼이다. 1개소에서는 고인돌과 돌덧널무덤이 각각 1기씩 조사되었으며, 다른 1개소에서는 구덩식 돌덧널무덤 6기가 조사되었다.
[위치]
평지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산3에 있다. 마령면사무소에서 임진로로 좌회전하여 국도 30호선을 타고 마령 중학교와 마령 고등학교를 지나 백운면 쪽으로 1㎞ 정도 가면 원평지 마을이다. 첫 번째 고분 떼[가 지구]는 원평지 마을 북쪽에 있는데, 이곳은 남악제 소류지의 동쪽으로 마주보이는 산의 끝자락이다. 두 번째 고분 떼[나 지구]는 원평지 마을 남동쪽 끝에 있는 최두칠 묘도비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평지리 고분 떼는 1996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이 고분 떼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1996년 말 백제 문화 개발 연구원의 학술 연구 보조금을 지원 받아 1997년 10월 27일부터 11월 26일까지 약 한 달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평지리 고분 떼의 발굴 조사는 고분이 밀집된 두 개의 지역에서 유구가 극심하게 훼손된 고분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평지 마을을 중심으로 북동쪽 서사면에 위치한 가 지구에서 고인돌과 돌덧널무덤이 각각 1기씩 확인되었고, 남동쪽 남사면에 해당하는 나 지구에서는 구덩식 돌덧널무덤 6기가 확인되었다. 주변에서 1기의 굴식 돌방무덤도 조사되었다.
[형태]
가 지구에서는 고분석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다수 노출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도굴갱의 흔적도 보인다. 주변에 조성된 민묘의 축대는 고분의 천정석이나 벽석을 이용하여 쌓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나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분석으로 추정되는 가공된 석재들이 마을 도로변과 밭둑에서 확인된다. 민묘의 축대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분의 측벽석이나 천정석이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7년 발굴 조사에서는 가 지구의 돌덧널무덤 1기는 유구의 남쪽 부분이 잘려나가고 벽석의 하단부만 남아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다. 나 지구에서 조사된 6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도 2기만 천정석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고분은 벽석의 일부만 보존되어 있었다. 6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 중 1호분은 등고선과 평행되게 축조하였으며 나머지 5기는 등고선과 직교되는 장축 방향을 가지고 있다. 등고선과 평행하게 장축 방향을 둔 1호분은 북벽에 잇대어 시상대를 마련하였으며, 2호분과 3호분은 벽석을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안으로 기울게 쌓고 할석을 이용하여 바닥을 깔았다. 이 중 2호에서는 20여 점의 통일 신라 시대 토기류가 부장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평지리 고분 떼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뚜껑 있는 합·병 모양 토기[甁形土器]·편구호형 병(扁球壺形甁)·굽 달린 사발 등 모두 25점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평지리 고분 떼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루어진 극심한 도굴과 대대적인 개간 사업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더욱이 남쪽 경사면의 경우는 고분이 있는 곳에 다시 민묘를 조성하여 훼손 상태가 더욱 심각하다. 또한 고분 떼 가 지구의 북서쪽의 남악제 소류지 남서쪽 넓은 뜰에는 예전에 4~5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논을 개간하면서 모두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평지리 고분 떼의 고분들은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사용되었던 무덤 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 시기 섬진강 상류 지역의 무덤 양식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