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493
한자 月良縣
이칭/별칭 난진아현(難珍阿縣),진안현(鎭安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67년 - 월량현에서 진안현으로 개칭, 벽계군 소속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391년 - 진안현에서 월량현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413년 - 월량현에서 진안현으로 개편
관할 지역 월량현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정의]

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월량현(月浪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으로 지명을 정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월량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진안현의 연혁을 상고하면서 이를 백제의 난진아현(難珍阿縣)으로 보면서 난진아현월량현이라고도 부른다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백제가 이 지역을 장악한 이후 지방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에 대한 행정 명칭으로 월량현이 등장한 것 같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는 “진안현은 본래 백제 난진아현-달리 월량현이라고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서 장계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도 내속시켰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가 공양왕 3년에는 마령의 감무도 겸임하게 하였다[鎭安縣 本百濟難珍阿縣-一云 月良縣-新羅景德王改今名 爲長溪郡領縣 高麗初來屬 後置監務 恭讓王三年 兼任馬靈].”고 하였다.

[변천]

월량현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벽계군 소속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는 전주에 소속되어 고을 수령인 감무(監務)가 파견되는 현이 되었는데, 이 감무가 인근의 마령현(馬靈縣)까지 관리하게 되면서 진안과 마령이 하나로 연결되는 단초가 제공되었다.

1391년(공양왕 3)이 되면 마령현까지 함께 다스리는 현령이 파견되는 독립 현으로 ‘월량현’이 재등장한다. 월량현은 1413년(태종 13)에 진안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이후 진안현은 1895년(고종 32)에 전라북도 관찰사 아래 26군을 두면서 진안군이 되었고, 다시 1914년에 실시된 군현 통폐합에 따라 용담군과 합쳐져 현재의 진안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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