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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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耳山祭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406[동촌리 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병남 |
현 소재지 | 마이산 제단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406[동촌리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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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은수사에 있는 제사 유적.
[건립 경위]
마이산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서다산(西多山)이 백해군(伯海郡) 난지가현(難知可縣)에 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서도 진안현의 마령에 “마이산이 있는데 신라에서는 서다산이라 불렀으며 소사에 실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마이산의 옛 이름이 서다산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다[立]산’ 또는 ‘솟다[聳]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마이산 제단 신라 사전에 ‘서다산이 백해군에 있는데 고을의 명산이지만 소사에 들었다.’라고 하였다. 고려에서도 그대로 쫓았다. 본조에서는 태종 13년 남행하였을 때 이 산 밑을 가게 되었는데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고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지금도 본읍에서는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을 통해 적어도 18세기까지 마이산에서 제사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마이산 은수사에 있는 마이산 제단은 1990년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진안군이 복원·축조한 것이다.
[위치]
마이산 제단은 태조 이성계의 건국 설화인 「몽금척(夢金尺)」과 관련이 있는 마이산 은수사(銀水寺)에 있다. 마이산 북부 주차장에서 마이산의 암마이봉[686m]과 수마이봉[680m] 사이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과 마이산의 탑사에서 수마이봉 아래로 올가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마이산 제단은 수마이봉 아래에 있는 은수사의 무량광전 뒤쪽의 산신각 오른쪽에 있다.
[형태]
마이산 제단은 돌로 2단의 축대를 쌓은 제관이 있는 곳과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구분된다. 정면의 3개의 계단과 측면의 4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리석 제단이 나온다. 마이산 제단의 뒤쪽에는 ‘마이산신제(馬耳山神祭)’라고 한자로 크게 써 놓은 푯말이 있다. 제관이 있는 곳에서 제단으로 오르는 정면 계단의 오른쪽에는 향로를 두었고 왼쪽에는 제사가 끝난 후 축(祝)을 태우는 망료위(望燎位)를 마련해 두었다.
[현황]
마이산 제단에서는 매년 10월 11일 오후에 진안군이 주관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연풍(時和年豊)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유교식 제의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초헌은 진안 군수가, 아헌은 지방 의회 의장이, 종헌은 유림 대표가 올린다. 산신제는 우선 본제에 앞서 마이산 산신을 모셔오는 영신제(迎神祭)가 제단 바로 옆에서 행해지고, 제사를 지낸 후에는 제물을 참례자와 같이 나누는 음복 순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