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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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火災-銀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규영 |
[개설]
은천(銀川) 마을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의 자연 마을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으로 일찍이 1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 형성되었고 큰 규모의 마을 숲이 조성되었다. 또한 거북 신앙 등 민간 신앙이 전승되어 왔다.
[은천 마을의 터]
은천 마을은 마을 ‘뒷동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있다. 마을 ‘뒷동산’은 마이산 자락에서 내려온 줄기이인데 마을에서 우측 ‘투구봉’ 줄기가 백호(白虎)에 해당한다. 이곳을 ‘텃골’이라 부르는데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마을에서 좌측 청룡(靑龍)은 ‘사자골’이 있는 줄기이다. 마을 앞산을 ‘안산(案山)’이라 부르는데 안산은 두미봉(斗尾峯)[533m] 줄기에서 마을 앞쪽으로 내려온 줄기이다. 두미봉은 모양이 말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산 줄기의 천안 전씨의 묘가 와우혈(臥牛穴)에 해당한다고 한다. 마을 앞에 조그만 동산이 있어 이를 ‘은봉’이라고 하는데 소의 구시[여물통]로 인식하고 있다. 소 앞에 여물통이 있으니 풍요로운 형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은천 마을 유래]
은천 마을은 약 200여 년 전에 동천 최씨, 천안 전씨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천안 전씨가 20호 정도로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각성바지이다. 전체 가구 수는 60호 정도 된다. 예전에는 100여 호가 넘던 큰 마을이었으며 텃골, 윗뜸, 아랫뜸으로 나뉘었다.
[은천 마을의 지명 유래]
은천 마을은 시냇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숨을 은(隱)자를 사용하여 은천리(隱川里)라고 불렀다. 성수산[1,059m] 복지봉 기슭에서 내려오는 물이 은천 마을 앞에 오면 개천으로 흘러가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른다. 예전에도 이곳에는 샘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그 샘물을 조선 시대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지나면서 손으로 떠서 마셨다고 해서 어수정(御手井)이란 이름이 전한다. ‘숨다’라는 뜻을 가진 은(隱)이란 글자가 부정적인 뜻이라 하여 마을사람들이 은(隱)을 음이 같은 은(銀)으로 바꿔 은천리(銀川里)로 바꾸었다. 1789년에 편책한 『호구 총수』에 나오는 ‘가림천리(佳林川里)’라는 곳이 은천 마을의 옛 이름으로 추정된다.
한글 학회가 조사·편찬한 『한국 지명 총람』에 의하면 ‘본래 진안군 두미면의 지역으로서, 개천이 마을을 갈라놓았으므로 가름내 또는 가림, 가림천이라 하였는데’라고 기재되었으나 지금의 원가림 마을에는 개천이 마을을 갈라놓은 곳이 없으므로 근거가 희박하다.
[은천 마을의 민간 신앙]
은천 마을의 당산제는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 뒷산 사자골에 있는 샘물 부근의 당산나무와 마을 앞 돌거북에 지냈다. 당산제가 행하여지기 전 당산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풍물을 치면서 각 호마다 방문하여 곡식을 걷어 제수를 장만하여 연세가 높은 분으로 제관을 삼아 마을 뒷산에서 당산제를 지낸 후 돌아와 마을 앞에서 거북제를 지냈다. 돌거북은 현재 도로변의 줄사철나무가 있는 곳에 있었다고 하며 돌탑 위에 자연석을 거북 모습처럼 가공한 형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을 ‘거벅 거리’라 부른다.
돌거북을 조성한 이유는 1919년에 마을 전체가 불타는 큰 화재가 일어난 이후 이 마을을 지나던 고승이 ‘마을에서 보이는 서촌 써리봉이 화산(火山)이라 화재가 나니 화재를 막을 비방으로 돌거북을 만들어 세우라’고 하여 다음 해에 자연석을 거북처럼 다듬어 세웠다고 한다. 거북은 수신(水神)으로서 화재막이로써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방죽을 2개 만들고 나무로 용 형상을 만들어 묻기도 했다. 용은 수신(水神)으로 여기기 때문이고, 연못은 방화수(防火水)로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경에 돌거북을 도난당한 이후 거북제가 끊겼으나, 2006년 정부 보조로 마을 숲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돌거북을 복원하여 거북제를 다시 지내게 되었다. 거북제의 원형은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잊어버려 유교식을 절충하여 제를 지낸다.
[은천 마을의 복원된 거북제 순서]
먼저 거북제를 알리는 길놀이를 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거북 앞에서 한바탕 풍물을 울린다. 이어 제단에 한지를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맨 위에 팥죽, 묵, 촛불, 돼지 머리, 떡시루, 촛불을 놓고 그 다음 열에 여러 가지 적을 놓고 그 다음 열에 여러 가지 나물을 놓는다. 그 다음 열에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등의 과일을 놓고 그 다음 열에 향불을 놓는다.
제의 절차는 분향 강신, 일동 재배, 제관 독축, 헌작, 일동 재배, 소지, 철상, 음복, 음복 후 돼지 머리·과일·떡 등을 제단에 헌식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한바탕 풍물 울리고 끝을 내며 잔치가 벌어진다. 길놀이단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방문을 원하는 주민의 집에 가서 풍물놀이를 해준다.
[신위와 축문]
은천(銀川) 거북 신령지위(神靈之位)
○○년 정월을 맞아 우리 마을 거북 신령에게 제를 올리나이다. 거북 신령이시어 올해도 마을 주민들과 외지에 나간 자녀들 모두 건강하고, 하는 사업 모두 형통하고, 집집마다 행복이 가득 넘치는 한 해가 되도록 보살펴 주시고, 우리 마을 대소사에 막힘이 없도록 보살펴 주소서. 이에 우리 마을 주민들은 삼가 맑은 술과 제수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흉액을 차단하는 마을 숲]
마을 앞에 느티나무, 팽나무, 서나무 등으로 큰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숲이 없으면 마을이 허(虛)하기 때문에 숲을 조성하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을숲은 도로 건너편 마을의 남서쪽 숲터에 조성되어 있고, 또 하나는 마을 옆 남서쪽을 가리고 있다. 멀리 마을 남서쪽의 산 모양이 요살(曜煞)이므로 오방(午方)[남쪽]에 요살(曜煞)[수행(水行)이라 함]이면 오행에서 수화(水火)가 상극하는 형국으로 흉국(凶局)이라 이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라 한다. 마을 숲 안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사철나무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사철나무]
은천 마을의 마을 숲은 마을의 소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된 3그루의 줄사철나무가 있다. 수령은 200년 정도이며 인근의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마이산 줄사철나무[천연기념물 제380호]와 같은 종(種)이다. 줄사철나무는 노박 덩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의 덩굴 식물로 줄기에서 잔뿌리가 내려 나무나 바위를 기어오르며 자란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숲에는 비 앞에는 ‘조선 총독부(朝鮮 總督府)’라 새겨진 비석이 있는데 전체 길이는 1.5m 정도이고 크기는 가로 20㎝, 세로 20㎝ 정도이다. 뒤쪽을 살펴보면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제팔십육호(第八十六號) 진안(鎭安) □□□ 자생 북한 지대(自生北限地帶)’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