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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가 내려진 오성복(吳成福) 이 형이다. 아들로는 오석한(吳錫漢) , 오제한(吳濟漢) 등이 있다. 오성수(吳成壽) [1805~1870]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도함을 수신의 요체로 삼고 글을 읽음으로써 경사(經史)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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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이 수양대군 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창덕궁 으로 옮기니, 벼슬을 버리고 백악산 조용한 곳에 가서 시사를 한탄하며 숨어 있다가 곧 이어 가족을 이끌고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로 내려와 증조할아버지인 문평공 전문식(全文軾) 의 유훈을 받들며 은거하게 되었다. 스스로 ‘ 낭헌 '이라 자호하고 산 높고 물 맑은 월랑 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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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웠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태조 이성계 가 세 차례나 조정으로 나오라고 하였지만 모두 거절하였으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마침내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江亭里) 에 은거하였다. 전문식 의 후손들이 진안 에 세거(世居)하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였다. 한편 진안군 내의 천안 전씨 세거지는 마령면 강정리 , 덕천리 , 오동리 와 성수면 도통리 등지에 있다. 전문식 은 1400년(정종 2)에 이르러 정종 의 간곡한 청으로 잠시 경상백(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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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진안현 은 고려 건국 후에는 전주 에 소속되어 고을 수령인 감무(監務)가 파견되는 현이 되었는데, 이 감무가 인근의 마령현(馬靈縣) [지금의 마령면 · 백운면 · 성수면 ]까지 관리하게 되면서 진안 과 마령 이 하나로 연결되는 단초가 제공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진안현 은 마령현 을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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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원류』 에는 최종 관직이 통찬(通贊)으로 되어 있다. 간흉이 판을 치고 여러 대군들이 강성하여 단종 이 임금 자리를 내어놓게 되는 어지러운 정국이 되자,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고 관직에서 물러나 ‘ 퇴헌 '이라 자호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으며 세상을 마쳤다.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에 있는 이산묘 영모사 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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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으며 이산묘 에 추향하니 두 형제의 순절을 ‘쌍충'이라 하였다. 이런 사적이 『동학지(東鶴誌)』 와 『호남지(湖南誌)』 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23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정 마을 영계사 왼쪽에 ‘쌍충신 전공자온자양 신단비(雙忠臣全公自溫自讓神壇碑)'이라 새진 비석이 건립되었다. 진안 이산묘 영모사 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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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하였던 도요지는 69개소이다. 도요지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동향면 에 1개소, 마령면 에 2개소, 백운면 에 6개소, 부귀면 에 15개소, 상전면 에 1개소,...졌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17세기에서 18세기의 도자 생산이 두드러진다. 그 밖에 마령면 덕천리 에서 녹색의 시유 도기가 확인되며, 동향면 성산리 · 마령면 평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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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에서 살았던 담락당 하립 이 남긴 조선 후기 시문집. 『담락당 시집(湛樂堂詩集)』 은 하립 이 남긴 시문집으로 전라북도 진안 과 남원 에 관한 시문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진안 마이산(馬耳山) 천지탑 과 관련한 내용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하립 의 부인은 『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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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류 문인. 김삼의당 은 남원 에서 태어나 32세 때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로 이주하여 살았던 조선 후기의 몰락 양반 여성 문인이다. 가난한 살림을 꾸... 가세가 더욱 빈한해지자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서 1801년(순조 1) 32세에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진안 에 살았다. 시부(媤父) 와 시형제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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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陽人)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氵+昱) 과 혼인했다. 이후 14년 동안 남원 에서 생활하다가 빈한한 가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1801년 신유년 32세에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진안 에서 살았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일상생활 속의 일과 전원의 풍치 등을 260여 편의 한시와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