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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216
한자 張台成
이칭/별칭 장공욱,장수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6월 19일연표보기 - 장태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8년 5월 29일 - 장태성 징역 6월 투옥
활동 시기/일시 1930년 7월 16일 - 장태성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30년 7월 25일 - 장태성 구류 29일 처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32년 2월 23일 - 장태성 피체 후 징역 8개월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87년 2월 7일연표보기 - 장태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 - 장태성 건국 포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27년 - 옥구 농민 항쟁 발발
출생지 장태성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거주|이주지 장태성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장태성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간회 군산 지회 대표 회원

[정의]

일제 강점기 소작 쟁의에 참가한 군산 지역[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장태성은 1927년 옥구 농민 조합 서수 지회 집행 위원으로 이엽사 농장 소작료 감액 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장태성은 1927년 10월 옥구 농민 조합 서수 지회(瑞穗支會)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어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1월 간부 김행규(金杏奎)와 함께 이엽사 농장의 부당하게 인상된 소작료 감액 투쟁을 전개하다가 서수면 경찰 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당했다. 이에 조합원들과 농민들은 서수 주재소를 파괴하고 장태성을 구출했지만 군산 경찰서에서 파견한 경관대에 다시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1929년 9월부터 노동 운동 관계로 수차례 구류 처분을 받았고 1930년 7월 16일에 군산 철도 노동회·군산 노동회·군산 하차 노동 조합 등 군산 노조(群山勞組) 활동으로 전북 경찰부에 체포되어 7월 25일에 전주 지방 법원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신간회 군산 지회 대표 회원으로 활동하다 1932년 2월 23일 군산 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2)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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