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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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承喆 |
이칭/별칭 | 오복금(吳福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1927년 11월 25일과 11월 26일 전라북도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과도한 소작료 인상과 구 농민 조합 간부의 검거에 항의하여 옥구면 서수리 주재소에 가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석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현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에서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장태성·박상호 등의 주도로 옥구 농민 조합 서수지부가 결성될 때에 참여하였다. 1927년 11월 25일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에 있던 주식 회사 이엽사 농장이 소작 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옥구 농민조합 서수지부의 간부들이 나서서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되었고, 지부장 장태성이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오승철은 장태성이 군산 경찰서로 압송되는 도중 서수면 임피 경찰관 출장소에서 일시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박상호·김행규·문일만·신문관·최봉엽·이성순·정연운 등과 함께 오백여 명의 농민들을 규합하여 동 출장소를 습격하고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이를 이유로 조합원 팔십 여 명과 함께 오승철은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29일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1928년 5월 29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건국 포장, 200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