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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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豊 |
이칭/별칭 | 옥구 농민 항쟁,이엽사 농장,서수,독립운동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재풍은 1927년 11월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현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에서 이엽사 농장의 고율의 소작료와 옥구 농민 조합 서수 지부 간부의 검거에 항의하여 임피 역전 주재소와 서수 주재소를 습격하여 구금자를 탈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에서는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고,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장태성·박상호·김영준 등에 의해 옥구 농민 조합 서수 지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신문관·정영운·최은엽 등과 회원 모집에 노력하여 그 결과 회원 수가 약 2백 명이 되었다.
1927년 11월 25일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에 있는 일본인 농장인 주식 회사 이엽사 농장이 소작 농민들에게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과 김행규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사이토[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저녁 무렵 이진섭은 장태성이 군산 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 경찰관 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김재풍은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 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체포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김재풍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재풍은 1928년 2월 29일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 유예 2년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재풍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